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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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부족에 직원들 허둥지둥… 고객 반응은 ‘싸늘’

‘ISA’ 출시 첫날 은행·증권사 창구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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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시중에 처음 선보인 14일 오후 기자는 서울 명동의 한 시중은행 지점을 찾았다. ‘만능통장’이라 불리는 ISA에 가입할 요량이었다. 은행 직원은 아무 설명 없이 대뜸 상품 목록부터 꺼냈다. 목록에는 예금,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가 나와 있었다. 상품을 설명하려던 이 직원은 주가연계증권(ELS) 목록이 없다며 부랴부랴 상품 목록을 출력해 보여줬다.

직원은 투자 성향을 파악하지 않고 ELB 등 투자 상품을 권했다. 기자가 정기예금 한 가지만 가입해 일단 계좌를 열어두겠다고 말하자 그는 그제야 투자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설문지를 쓰라고 했다. 투자성향은 은행 예적금만 가입할 수 있는 등급이 나왔다. 애초 성향에 맞지 않는 투자 상품을 권유했던 셈이다. 설명이 구체적이지 않았고 서명 위주로 진행했는데도 가입이 끝나는 데 30분 가까이 걸렸다.

황교안 국무총리(오른쪽)가 이경섭 NH농협은행장(오른쪽 두 번째)과 함께 14일 농협은행 대전중앙지점에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가입한 후 직원으로부터 통장을 받고 있다. 황 총리는 “ISA 같은 좋은 취지의 서비스도 소비자들이 불편하고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으므로 소비자들에게 상품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적극 알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NH농협은행 제공
직원은 또 근로소득 연 5000만원 이하(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 사업자) 근로자가 가입할 수 있는 서민형 ISA(의무유지기간 3년, 비과세 대상 수익 250만원)를 바로 가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전산 연결이 덜 돼서 일단 일반형으로 가입해야 한다”며 “5월에 서민형으로 전환되면 안내 문자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은행 본점과 금융위원회에 확인해본 결과 서민형 ISA도 이날부터 즉시 가입할 수 있었다. ISA 준비 과정에서 바뀐 내용을 직원이 숙지하고 있지 않아 생긴 소동이었다.

이처럼 ISA 가입 첫날 은행창구에서는 준비 부족 탓에 혼선을 빚기 일쑤였고 소비자들의 반응도 싸늘했다. 가입시간이 40∼50분이 걸리는데도 은행 창구에서 가입을 위해 줄을 서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입이 몰릴 줄 알았는데 재형저축 출시 때와 비교하면 반응이 너무 없다”며 “가입할 수 있는 상품 숫자가 아직 많지 않고 1인 1계좌만 가능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여의도의 각 증권사 지점에서도 일반 고객보다 실적을 위해 동원된 자사 직원들이 더 많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ISA를 문의한 고객은 1명뿐이었다”며 “비과세 혜택이 적어 다들 ‘두고 본 뒤에 하자’는 생각이라 인기가 없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ISA 가입을 위해 증권사를 찾은 김모(56·여)씨는 “수수료가 계속 변할 거라 몇 개월 기다려보고 가입하라는 얘기를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며 “공격적인 투자를 할 생각은 아직 없고 예금에 한 달에 50만원 정도씩 넣으면서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적용 가입’을 위해 지점에 온 한 증권사 직원은 “한번 가입하면 3∼5년 동안 돈이 묶여 불편하고 비과세 혜택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며 “솔직히 말해서 ‘안 될 상품’이라는 생각인데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창구에서는 가입 조건을 잘 모르고 온 고객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 지점 직원은 “50∼60대 고객 중 비과세 대상 수익이 5년에 200만원인데 1년에 200만원인 줄 알고 왔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있었다”고 전했다. 증권사별 자체 집계를 보면 NH투자, 삼성, 미래에셋 증권이 이날 1600∼1700여 계좌를 유치했다. 증권사 전체로 따지면 약 8000명이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들은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와 시중은행 경영진은 이날 ISA 출시를 맞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NH농협은행 대전중앙지점을 방문해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이경섭 농협은행장으로부터 ISA 준비 상황을 보고받고 ISA에 가입했다. 황 총리는 “ISA는 저금리·고령화 시대에 국민 재산 증식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금융서비스로서 중요한 금융개혁 과제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광구 행장 등 우리은행 임원진 24명도 서울 주요 지점을 방문해 ISA 판매 독려에 열을 올렸다.

한편 이날 금융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ISA 도입으로 세제 혜택을 소비자가 받는 것이 아니라 금융사가 받아가는 구조여서 서민을 위한 상품이 아닌 세금 탕진 상품”이라고 비판했다. ISA는 수익의 15.4%인 이자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1% 안팎의 상품 운용수수료를 금융사에 줘야 하기 때문에 절세 효과를 금융소비자가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금융사로 이전된다는 주장이다.

오현태·김라윤 기자 sht9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