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룰에 따라 덤 7집반 부담을 지는 흑을 자청해서 잡은 이 9단은 이날 바둑 내용에서도 기백을 과시했다. 알파고의 약점을 노리는 승리 위주의 작전을 취하는 대신 자기 스타일의 바둑으로 진검승부에 나선 것. 흑1∼5는 고전적인 소목 포진. 알파고는 백6∼12로 응수했다. 수순 중 백10은 바둑계 연구를 촉발할 ‘알파고’류다. 백10도 정석의 일환이지만 백54와 흑11을 교환하고 백24로 가는 수순도 널리 쓰인다. 왜 알파고는 5번기에서 단 한 번도 54의 자리를 택하지 않은 것일까. 알파고는 한사코 10의 자리만을 택했다. 승산이 더 높다고 추정한다는 뜻이다. 알파고의 확률 계산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취재 경쟁 취재진이 1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5국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
백26은 큰 곳. 하지만 흑27의 맞보기 자리는 이 9단에게 돌아갔으니 피장파장이다. 백30은 세력 바둑을 원한다는 알파고의 선언. 이 9단은 흑31∼39의 기민한 대응으로 백의 의도를 무력화했다. 백40∼흑47은 흑백의 상반된 입장을 드러낸 호각의 절충이다. 알파고는 중원 경영의 꿈을, 이 9단은 ‘선 실리 후 타개’의 꿈을 키웠다. 이 수순 중 흑43, 백44의 교환은 다소 이례적. 흑에겐 자충수의 의미가 있다. 조훈현 9단은 흑이 이 교환 없이 곧장 45의 자리로 갈 경우 알파고는 백47로 삼단젖힘을 해 좌변 경영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상변 삭감에 나선 흑69에 알파고가 백70으로 강압적으로 대응한 것은 불리한 형세를 감안했기 때문. 백70∼흑77은 흑에게 기분 좋은 흐름이나 방심 탓인지 갑자기 의문수가 나왔다. 상변 흑돌의 삶을 서둘러 도모한 흑79·81의 수순이 결과적으로 백의 추격을 허용하는 빌미가 됐다. 흑79로 80 등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라”고 외쳤으면 흑 우세가 계속됐을 것이다. 결국 우상변 쪽에 백의 큰 모양이 굳어지면서 형세는 알 수 없게 변했다.
좌하귀의 흑107∼백132 절충은 흑에게 불만. 백이 간발의 차로 계속 앞서 나가자 이 9단은 좌하귀에 흑169를 투하해 백180까지 바꿔치기를 감행했다. 하지만 승부는 다시 뒤집히지 않았다. 역시 덤 7집반이 부담이었고, 방심이 문제였다. 알파고의 강력한 수읽기 능력을 과도하게 경계한 것도 보이지 않게 화를 키웠을 것이고….
이승현 논설위원 tral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