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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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잃은 검찰, 이대로 좋은가] 핵심 '인사' 쥐락펴락… 검찰 길들이기

(3) 정치적 중립성 왜 무너지나 / 檢 핵심 인사 청와대서 낙점… 권력 눈치 안 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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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수사와 관련된 것을 포함해 정말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이런 정보를 통해 결국 장악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훈 교수는 우리나라 검찰의 ‘힘’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정보를 모은다. 사회 각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 중 의미있는 것들은 거의 포착한다. 하 교수는 “검찰이 이처럼 많은 정보에다 수사기소권을 갖고 있으니 정권 입장에서는 ‘검찰을 손아귀에 넣으면 유리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 검찰의 문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정치적 중립이다. 역대 국회와 정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 확보를 위해 많은 장치를 뒀다. 검찰총장 2년 임기제,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 금지, 민간인이 참여하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 특별검사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권을 쥔 권부 핵심이 검사 인사권을 무기로 검찰을 길들이려는 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요원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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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 직행’ 논란

“청와대에 간 적 있습니까. 민정수석과 통화한 사실은요.” 노환균 전 법무연수원장, 김수남 검찰총장, 박성재 현 서울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야당 의원들에게 받은 질문이다. 김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들었다. 당사자가 아무리 부인해도 의원들은 ‘청와대와 중앙지검장이 직거래를 한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은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대기업 임원 등을 가장 활발히 수사한다. 2013년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로 대형사건 수사는 사실상 중앙지검이 도맡았다. 수사지휘 사령탑인 중앙지검장에게 값진 정보가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군다나 중앙지검장은 전국 지검장 중 유일한 고검장급으로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에 든다. 검찰 주변에서 ‘중앙지검장이 총장이나 법무부를 건너 뛰어 주요 정보를 청와대에 직보하고 그 대가로 차기 총장 승진을 노린다’는 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실제로 이명박정부 때인 2011년 당시 이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인 한상대 중앙지검장이 총장으로 직행해 정치적 중립 논란이 일었다. 이 대통령은 앞서 2009년에도 천성관 중앙지검장을 총장에 바로 앉히려다 국회 인사청문회의 벽에 막혀 실패했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주요 사건 수사의 한복판에 있었던 중앙지검장이 총장으로 바로 가는 것은 올바른 인사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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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권 통한 검찰 장악 시도 중단해야”

노무현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권은 거의 예외없이 청와대 민정수석에 검찰 출신 인사를 앉혔다. 검사가 ‘사정 업무 전문가’라서 이 자리에 앉혔다고 하지만 속내는 딴판이라는 시각이 많다.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을 좌지우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우병우 현 민정수석을 둘러싼 온갖 논란도 이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검찰청, 중앙지검 청사가 있는) 서초동을 중심으로 우 수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데 근거 없이 떠도는 얘기다. 그는 민정수석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한 사람”이라며 우 수석의 검찰인사 입김 의혹 논란 등을 일축했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는 다르다. 사법연수원 19기인 우 수석의 동기들이 법무부와 검찰 요직에 포진해 있는 데다 얼마 전 인사에서 고검장으로 승진한 6명 중 김강욱 대전고검장 등 3명도 우 수석의 동기생이다.

현행법상 검사 인사권은 법무장관에게 있다. 검찰총장은 인사에 관해 법무장관과 ‘협의’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중앙지검장을 비롯한 일부 핵심 보직은 사실상 청와대가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 관계자는 “아무리 수사 능력이 뛰어난 검사라도 인사에서 연거푸 물을 먹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자리로 가게 되면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검사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인사권을 쥔 쪽에 신경이 쓰인다”고 털어놨다.

지난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검사들의 행보를 보면 검찰의 현주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근혜정부가 껄끄러워했던 이 사건의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검사는 ‘당대의 특수통’이란 평가에도 불구하고 특별수사 핵심 보직에서 배제돼 한직만 맴돌고 있다. 부팀장이었던 박형철 전 검사도 잇단 인사 불이익을 당한 끝에 칼을 내려 놓고 검찰을 떠났다.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창현 교수는 “결국 정권 차원에서 검찰을 이용해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방식을 내려놓지 않는 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법조팀=이강은(팀장)·김태훈·박현준·정선형·김건호·이창수 기자 societ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