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규제에 치이고 기득권에 받치고…'덜컹대는 콜버스'

[이슈&현장] 본격 시행 앞두고 논란 가열
지난 25일 밤 12시가 지난 서울 강남대로. 역시 ‘불금(불타는 금요일)’답게 택시잡기 전쟁이 한창이었다. 정말 택시가 없었다. 한 젊은 커플은 도로 중간까지 나가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종종 빈 택시가 지나갔지만 대부분 경기권 택시였다. 가끔은 서울 택시도 ‘빈차’ 사인을 켠 채 다가왔지만 창밖으로 한두 마디 건넨 뒤 다시 멀어져가기 일쑤였다. 이곳에선 빈 차라도 추가 요금 등을 내지 않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승차를 거부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렇게 심야의 강남은 택시가 ‘갑’, 고객이 ‘을’인 곳이다.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도로변에서 콜버스를 이용하려는 고객이 버스에 타고 있다. 자료사진
스마트폰 ‘콜버스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고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했다. 화면에는 버스 위치와 ‘승차 4분 전’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5분쯤 지난 뒤 콜버스가 도착했다. 앞서 본 커플은 계속 도로에 서 있었다. 목적지인 성수대교 남단 근처까지는 약 13분이 걸렸다. 요금은 3300원으로, 가입 시 주어지는 마일리지로 결제가 가능했다. 이날은 콜버스가 유료화된 첫날이었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심야 콜버스는 벤처기업 ‘콜버스랩’이 지난해 말 시작한 사업으로, 일종의 ‘카풀’ 형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목적지와 탑승 시간을 입력하면 비슷한 경로의 승객을 모아 버스를 운영하는 서비스다.

야간에 택시가 부족한 서울 강남·종로 등이 주무대로, 현재는 강남구·서초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요금은 최초 4㎞에 2000∼3000원이며, 이후 ㎞당 600∼700원의 요금이 추가로 부과된다.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 드는 택시요금의 절반 수준이라는 게 콜버스랩의 설명이다. 최근 심야 콜버스를 이용한 적이 있는 공모(26·여)씨는 “강남역에서 택시가 너무 잡히지 않아 바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택시가 있을 만한 곳까지 콜버스틀 타고 이동해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며 “아예 집까지 심야버스를 운행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구 역삼역 버스정류장에서 콜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승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콜버스는 언제 본격적으로 운행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택시업계의 반발, 서울시의 규제 등이 겹친 까닭이다.

콜버스랩이 인기를 끌자 택시업계는 “심야 택시 승객을 빼앗아간다”며 반발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중재안으로 기존 택시·노선버스 사업자에게만 심야 콜버스 운행 면허자격을 부여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 개정령’을 발표했다. 그러자 소비자 편의보다 기존 사업자의 밥그릇만 챙긴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국토부는 서울시에도 시행규칙 개정령이 공포되기 전에라도 콜버스 서비스가 제대로 시행되도록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렇게 내달 유료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서울시는 “콜버스와 관련한 택시업계 반발 등 잡음이 많고 콜버스 차량도 확보되지 않았다”며 빨라야 5월쯤 운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개정령이 공포된 뒤 택시회사가 콜버스 면허를 신청하면 그때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여기에 개인택시조합, 법인택시조합 등의 견해를 수렴해 콜버스 운영 지역을 강남 인근 3개구 내, 운영 시간을 자정부터 오전 5시로 제한했다. 이에 대해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는 “시민들은 서울시 전역은 물론 분당, 일산 등 경기도권까지 운행하기를 원하는 상황”이라며 “서울시에서 발표한 자료에도 택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간대는 오후 9시30분∼다음날 오전 2시인데 자정부터 운영하라는 것은 시민 편의는 안중에 없고 기존 업자들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한 전형적인 눈속임 규제”라고 지적했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