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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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사업자 눈치보다… 멀어지는 시장 창출

[이슈&현장] 자격 제한해 신규업체 진입 봉쇄/ 기술 개발하고도 호출 업체 전락
심야 콜버스는 수요가 시장을 창출한 경우다. 서울 강남 등은 노선 버스가 끊긴 시간에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대표적인 ‘심야 교통 사각지대’로 꼽힌다. 이런 곳에서 늦은 시간 귀가하려는 시민들의 원성과 불편이 만들어낸 것이 ‘수요 맞춤형 여객 사업’ 콜버스다.

최근 서울 강남구 역삼역 버스정류장에서 콜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태생부터가 이런지라 콜버스 도입에 대한 일반 시민 반응은 긍정적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달 콜버스 도입의 타당성을 검토하려는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심야 이동실태 보고서’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28일 이 보고서에 따르면 콜버스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49.7%로 반대(20.5%)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콜버스 도입 시 이용하겠다는 응답자도 51.9%에 달했다. 

이런 수요 조사를 바탕으로 우여곡절 끝에 다음달 콜버스 도입이 확정됐지만, 운행 허가시간과 구간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당초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부터가 문제였다. 이 개정안에서 국토부는 ‘한정면허’를 가진 사업자만 콜버스를 운행하게 했는데, 이는 사실상 기존 운송사업 면허를 보유한 택시·버스 사업자에게 사업 독점권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대로라면 맨 처음 전세버스를 빌려 콜버스를 시범운행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콜버스랩’은 버스 운행 면허가 없어 콜버스 호출만을 담당하는 업체로 전락한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콜버스가 운송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안착되고, 충분한 공급력을 확보하여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정면허라는 제도적인 틀을 마련한 것”이라며 “차량 안전관리, 운수종사자 수급 및 교육, 운전 시간 관리 체계 등을 갖추어 면허를 받아 운행하는 택시·버스 등의 면허사업자를 활용하는 것이 심야 콜버스의 안정적 공급 및 이용자 안전 담보 등 다각적인 차원에서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교통회관에서 열린 ‘콜버스 운행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이연수 서울개인택시조합 이사장, 오광원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 이사장, 박복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회 회장,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왼쪽부터)가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서울시는 한 술 더 떠 택시업체의 반발을 의식해 콜버스 운행 시간을 수요 피크 시간대를 피해 정하려고 하고 있다. 기득권 보호와 규제 칸막이에 갇혀 콜버스를 통한 진정한 신규 시장 창출이 요원해진 것이다.

앞서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출퇴근 시 시간과 장소가 일치하는 이용자들이 좌석을 미리 예약해 이용하던 통근버스 공동구매 서비스 ‘e-버스’가 2011년 1월 처음 도입되었다가 운행 15일 만에 불법 운송행위로 중단된 적이 있다. e-버스는 사용자가 출발지와 도착지, 원하는 시간을 입력하면 e-버스 운영사가 회원들의 정보를 분석해 최소 승차인원 20명이 채워지면 전세버스 업체와 계약을 맺고 운행하는 대표적인 수요 맞춤형 여객 사업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운행 행태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3조의 2호 가항의 ‘전세버스 운송사업의 정의 및 사업범위에 관한 규정’에 위반해 ‘동일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전세 버스에 태워 일정 노선을 다닌다’는 이유로 운행 중지시켰다.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능력을 가진 나라에서 높은 규제의 벽 때문에 신규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