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시간에 도심 도로 곳곳이 꺼졌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파손된 도로 위를 지나다 승용차의 앞바퀴가 빠지는가 하면, 인근 지하의 상수도관이 파열돼 일대 도로가 1시간 넘게 침수되기도 했다. 조사 결과 동시다발적인 도로함몰은 지하철 공사를 위해 하수관을 옮겨 묻으면서 관 연결 부위를 부실하게 접합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수관에 갑작스럽게 많은 빗물이 쏟아지자 이음새가 불량한 곳의 틈이 벌어져 물이 새 나온 것이다. 하수관 주변 토사는 물과 함께 쓸려 나갔고 도로는 주저앉았다.
해빙기를 맞아 포트홀과 도로함몰 등 도로상의 위험요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도로 파손은 10건 중 4건이 여름철에 집중된다. 이는 기온 상승과 강수량 증가에 비례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도로 파손 기온·강수 따라 춤춘다
29일 서울시에 따르면 2011∼2015년 서울에서 발생한 도로함몰과 지반 침하 등 도로 파손 3626건 중 40%(1448건)가 6∼8월에 집중됐다. 월평균 발생 현황을 보면 동절기에 줄었다가 7월에 최고점을 찍는다. 도로 표면이 파이는 현상인 포트홀은 같은 기간 총 4만7105건 중 약 20%(9229건)가 7월 한 달에 몰렸다.
물은 도로시설물의 노후화를 촉진하는 자연적 요인 가운데 1순위로 꼽힌다.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물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도로의 수명은 건조한 도로에 비해 40∼100배나 빨리 단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2015년 서울지역 포트홀 발생 현황을 보면 연간 강수량이 2043㎜로 최대였던 2010년에 7만7654건이었는데 가뭄이 심했던 지난해와 2014년은 3만건대에 그쳤다. 한국기술연구원 이대영 박사는 “여름철은 강수량이 늘어나면서 스며든 빗물이 도로 하부 지반을 약화시킨다”며 “또 지하 수위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물길을 만드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기후가 도로 등 도시기반시설 관리와 유지에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점을 감안하면 변화무쌍한 기온과 강수량 때문에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국내 47개 지역에서 6∼8월 집중호우(시간당 강수량 30㎜ 이상) 발생 빈도를 조사한 결과 1980년대에 평균 60회였던 것이 2000년대 들어서는 82회로 약 30% 늘었다.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화하는 추세도 염려스러운 대목이다. 2012년 이후로는 봄철인 4∼5월에도 도로 파손 발생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지난해에는 4월 97건, 5월 109건, 6월 104건, 7월 101건 등 넉 달 동안 전체의 56%가 집중됐다. 도로 보수가 집중되는 3월 말∼4월 초가 특히 중요한 이유이다. 이 시기에 보수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장마철을 지나면서 도로 파손이 재발하거나 파손 범위가 늘어나 시민 불편을 가중시키고 안전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오래전에 이 같은 일을 겪었다. 1990년대 뉴욕에서 운행되는 택시는 1년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교체되기 일쑤였다. 일반 차량도 2년을 넘기 힘들었다고 한다. 도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탓이 컸다. 울퉁불퉁한 노면을 달리다 보니 차량 통행 속도가 떨어지고 도시 교통 체증도 심해졌다. 교통지옥 속에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빈 병이 운전자들의 필수품이 될 정도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과거엔 도시기반시설 확장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이들 시설에 대한 장기적인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점”이라며 “도시 노후화로 1970년대부터 몸살을 앓았던 뉴욕과 1990년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도로 유지·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