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2시쯤 서울 여의도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연) 회의실은 격앙된 목소리로 가득했다. 지난 주말 4시간여 진행된 회의에 이어 각 장애인단체 실무자들이 소집된 긴급회의 자리였다. 참석자마다 분노와 침통이 뒤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여야 정당의 4·13총선 비례대표 공천 결과 당선권에 장애인 몫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전국 장애인단체와 장애인들을 대표할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부재는 16대 국회(2000∼2004년) 이후 12년 만이다.
30일 각 정당에 따르면 일부 정당의 비례대표 명단에 장애인 후보가 이름을 올렸지만, 모두 당선권 밖으로 분류된다. 새누리당이 군사작전 중 두 다리를 잃어 장애인이 된 이종명 전 육군 대령(육사 39기)을 비례대표 후보 2번에 배치했지만 이 전 대령이 장애인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를 소개하는 공식 자료에는 ‘전 육군 대령’만 언급돼 있고, 새누리당 관계자도 “발표된 것만 참고해 달라”고 말했다. 장총연 측 역시 “이 전 대령의 행보에서 장애인을 대표하는 정체성을 찾기 어렵다”(노임대 정책기획국장)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후보 27·30번, 국민의당은 15·16번, 정의당은 8번에 각각 장애인을 배치했지만 총선 판세상 모두 당선권과 거리가 멀다. 20대 국회에서 장애인을 대표할 비례대표의 탄생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이번에 각 당이 당선권 비례대표 후보에 장애인을 제외시킨 것은 사회 최약자층의 목소리를 외면한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신은경 단국대 교수(사회복지학)는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이 장향숙씨를 비례대표 1번에 세운 것은 충격이었다”며 “장애인 운동가 출신이 국회에 진출하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소수자를 위한 정책적 드라이브가 가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분야) 전문가라고 해도 (장애를 겪고 있는) 당사자가 아니면 장애인을 위해 절실하게 의정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장애인을 대표하는 목소리를 잃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활동가 이승일(44)씨도 “16대 국회 이후 이런 일이 없어 모두가 패닉인 상태”라며 “비례대표는 정치적으로 소외된 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비례대표 공천에서 장애인을 홀대한 것으로 비친 각 당이 경쟁적으로 재탕·삼탕 우려먹은 장애인 관련 공약을 내놓은 것도 장애인단체들의 분노 지수를 높이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52) 회장은 “장애등급제 폐지 등과 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부터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선거철마다 쏟아지는 장애인을 위한 공(公)약은 빈껍데기 공(空)약에 불과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