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경극으로 재탄생한 셰익스피어 작품

중국 국가화극원 연극 ‘리처드 3세’
‘영국판 수양대군’ 허무한 권력욕
중국 전통가극 틀 가져와 표현
중국적 특색을 가미한 셰익스피어 연극 ‘리처드 3세’가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단이 중국 국가화극원을 초청해 선보이는 작품이다. 극 중에서 인물들은 중국 전통 의상을 입는다. 경극처럼 타악 연주자도 등장한다. 국가화극원은 이를 통해 누구나 가진 권력욕과 선악의 공존을 조명한다. 이 작품은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념해 영국 글로브 극장이 연 ‘세계 셰익스피어 축제’에 초청돼 호평받았다.

‘리처드 3세’는 셰익스피어 역사극 중에서도 권력욕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평가된다. 영국 장미전쟁 시대 실존인물인 리처드 3세를 모티브로 한다. 1452년생인 리처드 3세는 ‘영국판 수양대군’으로 불린다. 1483년 어린 조카를 내치고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은 2년에 불과하다. 극의 주인공은 글로케스터 공작이다. 그는 친형을 살해하고 형수인 앤 부인과 정략결혼을 감행한다. 왕위 찬탈을 위해 감언이설과 모함으로 귀족들을 포섭한다. 귀족들이 에드워드 4세 왕에게 반발하도록 조종한다. 왕이 죽자 어린 왕자를 제거하고 마침내 왕좌를 뺏는다.

중국 국가화극원이 만든 ‘리처드 3세’는 셰익스피어 원작에 중국적 요소를 더해 누구나 가진 권력욕을 드러낸다.
국립극단 제공
연출은 국가화극원 부원장인 왕샤오잉이 맡았다. 리처드 3세는 꼽추이지만 왕 연출은 신체 장애를 부각시키지 않았다. 대신 권력의 허무함에 집중한다. 왕 부원장은 누구나 욕망의 지배를 받으면 리처드 3세가 될 수 있다고 바라본다.

최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권력욕, 질투심은 모든 사람이 가진 보편적인 것이지 리처드 3세의 욕망이 외모 때문에 더 크다고 보지 않는다”며 “폭군이나 음모를 꾸미는 이들도 사실 내면은 선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리처드 3세를 연기하는 배우 장둥위는 외모가 멋있어 장애나 추악한 면이 없고, 질투심이 폭발할 때 조금 추해질 뿐”이라며 “선과 악을 함께 표현하는 것은 태극도의 음·양과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에는 ‘맥베스’에 등장하는 세 마녀가 접목돼 리처드 3세의 욕망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경극의 특징도 들어 있다. 경극 배우 세 명이 무대에 서고 악사 한 명이 서른 개의 악기를 두드린다. 왕 부원장은 “중국 고전의 요소를 더한 것이 셰익스피어와 더 가까워지는 길이라 본다”며 “우리 공연은 도구가 거의 없고 큰 동작이 적은데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맞닿아 있다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무대 디자인에는 중국 설치미술가이자 서예가 쉬빙이 참여했다. 쉬빙은 미국의 ‘맥아더 어워드 지니어스상’을 받은 바 있다. 그는 흰 천에 ‘살인, 권력, 저주, 음모, 욕망, 악몽, 가식’ 등 12개 글자를 써서 텅빈 무대를 감쌌다. 인간의 죄악이 쓰인 흰 천은 마지막에 무너져 내리며 허무하게 끝나는 질투와 권력욕을 표현한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단과 국가화극원의 상호 교류 차원에서 열린다. 1∼3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오는 10월에는 지난해 국립극단이 선보인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중국 무대에 오른다. 2만∼5만원. 1644-2003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세계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