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청년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한국청년유권자연맹이 이번 총선에서 내건 슬로건이다. 별다른 청년문제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는 여야 정치권을 향해 노동권(빵)과 인권(장미)을 보장하는 정책 개발과 실천을 요구한 것이다.
청연 측은 “위기에 내몰린 청년들이 거리로 나와 ‘돌’을 들기 전에 20대 국회에서는 청년문제만큼은 한 마음이 되어 반드시 해결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후보자들을 선출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표 참여도 당부했다.
◆2030세대 투표율 올라갈까
2030세대는 스스로를 ‘오포세대’(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내집마련을 포기한 세대)라고 자조할 정도로 ‘헬조선’의 최대 피해자다. ‘열정페이’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과 상대적 박탈감에 고통받고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선거를 제외하고 2000년 이후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이 50%를 넘은 적이 없을 정도로 젊은세대의 정치혐오 또는 무관심은 심각한 상황이다.
총선은 유권자가 정치권에 자신들 목소리를 전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투표용지(ballot)는 총알(bullet)보다 강력하다. 2030세대도 이번 총선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13 총선 때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20대 유권자는 55.4%로 2012년 총선 때보다 19.3%포인트 늘었다. 30대 역시 59.6%로 증가했다. 젊은세대는 과연 이번 총선에서 그들의 ‘무기’를 제대로 꺼내들 것인가.
◆정치경제 주도권은 중장년층에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적 지형 변화도 인공지능(AI) 출현에 따른 일자리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변수다.'
미국계 글로벌 은행인 시티그룹이 지난 1월 발표한 ‘일자리 2.0 시대 테크놀로지’ 보고서 중 한 대목이다. 시티그룹은 로봇으로 대표되는 자동화가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 근로자들 일자리를 더 많이 빼앗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봇이 개도국 근로자 일자리의 경우 85%를 대체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일자리는 평균 57%에 그칠 것이라는 추산이다. 보고서는 이같은 추산 근거의 하나로 선진국 근로자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거론했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60세 이상 유권자 투표율은 약 70%였던 반면 18∼29세는 40%, 30∼44세는 55%였다. 이같은 인구학적인 변화가 시장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국 총선 투표율 OECD 최하위
시티그룹의 이같은 분석은 OECD가 2011년 내놓은 ‘한 눈에 보는 사회(Society at a Glance 2011)’ 보고서에 포함돼 있던 통계자료를 참고한 것이다. OECD는 당시 34개 회원국과 5개 주요 신흥국(브라질·러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네시아)의 55세 이상(장년층)과 35세 이하(청년층) 유권자들 간 투표율 격차(2011년 기준)를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OECD의 평균 장년층과 청년층의 투표율 차이는 약 12.1%포인트였다. 하지만 영국(38.2%포인트)과 일본(25.2%포인트), 한국(22.8%포인트) 등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가파른 나라의 경우 세대별 투표율 차이가 컸다.
OECD는 보고서에서 회원국들의 최근 투표율 현황도 비교했다. 2011년 기준으로 OECD 평균 투표율은 70%였다. 의무 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호주가 95%로 가장 높았고 룩셈부르크(92%), 벨기에(91%), 칠레(88%), 덴마크(87%)가 뒤를 이었다. 독일(78%)과 일본(67%), 영국(61%)의 최신 투표율도 중위권 수준이었다.
◆지난 30여년간 투표율 낙폭도 최하위권
한국의 투표율(2008년 총선)은 직접 민주주의제를 택하고 있는 스위스(48%), 대표적인 간선제 나라인 미국(48%)보다 낮은 46%에 불과했다. 이는 1981년 치러진 11대 총선 투표율(78.4%)에 비해 약 32%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이같은 하락폭은 OECD 중 슬로바키아(42%포인트) 다음으로 큰 것이다.
우리나라 총선 투표율은 일정한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15대 총선(1996년) 때 63.6%였던 투표율은 16대 57.2%, 17대 60.6%, 18대 46.3%(최종)까지 떨어지더니 19대 때는 54.4%로 반등했다.인구학적 변화나 전반적인 정치적 관심도와는 별개일 수 있는 것이다.
◆유권자수·투표율 모두에서 열세
투표율이 정치 바람을 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역대 총선을 보면 정국 분위기와도 크게 관련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불었던 17대 총선(2004년) 투표율은 16대 때(57.2%)보다 3.4%포인트 올랐다. 반면 한나라당 친박(박근혜)계 '공천 학살' 논란이 뜨거웠던 18대 투표율은 46.1%에 그쳤다.
이같은 결과는 2030세대가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 있어 별다른 파워를 갖추지 못했다는 근거일 수 있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도 낮을 뿐더러 기성세대에 비해 '한표'를 행사하는 젊은세대는 더 적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2030세대를 향한 '립서비스' 외에 별다른 공약을 내놓지 않는 이유다.
선관위는 이번 4·13 총선 전체 유권자들(약 4206만2935명)을 세대별로 분류한 결과 △60대 이상(23.40%) △40대(21.03%) △50대(19.91%) △30대(18.1%) △20대(15.95%) △19세(1.61%) 순이라고 밝혔다. 30대 이하 유권자보다 50대 이상이 322만여명 더 많은 것이다.
◆변화의 힘은 투표 참여
젊은층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는 정치·경제 기득권층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최소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토대다. 청년실업 등에 ‘분노한 표심’이나 2030세대와 40대의 전략적 ‘투표 연대’ 등의 담론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연유에서다.
세계일보는 ‘분노한 청춘들, 총선 투표율 견인할까’ 제하 최근 기사에서 “역대 최악의 청년실업률 등 고통받는 19∼29세 유권자가 ‘한국 정치를 바꾸자’며 이번 총선에 적극 참여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40대는 다른 연령에 비해 이슈나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40대 투표 성향이 총선 결과를 좌우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