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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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노력하면 비난받는 사회, "의식 높은 청년이 줄고 있다"

학교에서 남들보다 노력하면 ‘의식높은계(意識高い系)’라는 비난이 쏟아져 주위 친구들의 눈을 의식해야한다는 학생들과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곱지 않은 시선은 바뀌지 않는다는 청년들. '세상의 눈이 무섭다(世の目が怖い)'는 이들은 "혼자서는 이 사회를 바꿀 수 없다"며 무력감에 빠진다고 말했다.

지금 일본에서는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젊은 층의 노력마저 멈추게 해 사회적 손실이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의식높은계는 학교생활 또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말이 앞서며 잘난 채 하는 사람을 비꼬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기자와 신문은 전자로 봤지만 최근에는 후자의 의미가 강하다)
안보관련법 폐지 시위에 나선 일본 청년들. (사진= 아사히신문 캡처)
지난 2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의식높은계라고 불리는 학생들과 청년, 사회복지 담당자를 만나 실상을 전해 들었다.

일본 기후현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호즈미양은 “도쿄에서 학생과 국회의원을 만나 토론하는 자리인 '우리들의 한 걸음이 일본을 바꾼다'에 참석했다가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의식높은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호즈미양은 "'우리들의 한 걸음이 일본을 바꾼다'는 슬로건에 작지만 목소리를 내고 싶어 참여했지만 바뀐 것은 전에 없었던 친구들의 비아냥"이라며 후회된다고 말했다.

또 보육원 아이들을 지원하는 NPO법인 '키즈문'의 와타나베 유미코(渡辺 由美子·51) 이사장은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온 학생이 의식높은계라는 소문이 퍼지자 자원봉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며 “좋은 일을 하면 비난받는 잘못된 문화가 지금도 만연하다“고 아쉬워했다.

이를 두고 많은 해석이 나왔지만 '다른 아이들의 눈에 거슬린 것'이라는 의견과 '졸업 후 취업지원을 받을 목적'이다 등 곱지 않은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키즈문 측은 봉사활동을 한 학생들을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취업지원을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통계로도 나타나 2013년 일본 내각부가 13세에서 29세 젊은 층을 대상으로 '나의 참여로 사회현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나‘라는 설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30.2%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한국에서도 같은 설문을 한 결과 일본이 가장 낮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원봉사에 참여를 호소해도 사람이 모이지 않고, 5년 전 약 300명이었던 자원봉사학생들이 지금은 10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와타나베 이사장이 말했다.
의식높은계가 사람을 무시하기도 한다며 비꼬고 있다. (사진= 차트 프레스 캡처)
 '나의 참여로 사회현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나'라는 설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30.2%로 나타났다. 한국은 39.2%로 일본보다 높다. (자료= 일본 내각부 조사)
이런 와중 과거부터 언급되어온 ‘학교는 선택이다’라는 주장이 다시 나와 학생들의 혼란스럽게 했다.
비즈니스저널은 칼럼을 통해 '학교는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의식높은계의 의견을 전했다. 그들은 집단따돌림을 시작으로 서열화, 주입식 교육, 폐쇄성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공부는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실제 일부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 등을 통해 졸업자와 동등한 학력을 인정받고 있었으며 대학진학, 취업, 유학 등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 전화, 채팅,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지금 집단생활에 의문을 갖게 하고 "누구도 학교의 필요성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순 없다"며, 현재 "학교 교육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등교거부와 관련한 책이 다수 발간됐다. (사진= HMV 캡처)
위 주장은 “여러 대안이 있으니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로 해석하면 좋겠다. 경우에 따라 집단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앞의 주장처럼 학교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집단따돌림 등의 피해로 학교생활이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획일적인 기준에 맞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시선을 의식해 소신껏 행동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로 누군가를 돕거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노력이 힘든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