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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2> 슈퍼맨은 어디에…독박 육아를 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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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이와의 캠핑 데이트를 꿈꾸는 남편이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애가 태어나서 좀 크면 캠핑카 사서 놀러다닐까?”

연애를 5년이나 했지만 신랑이랑 캠핑 데이트를 한 적은 없었다.

“웬 돈 낭비야. 애랑 캠핑 몇 번이나 간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내심 기특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 벌써부터 캠핑 나들이를 준비하는 남편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연예인 아빠의 모습이 조만간 아빠가 될 내 남편의 미래 같았다.

그러나 남편의 ‘친구 사건’과 함께 독박육아의 서막은 열리고 있었다. 친구와 바람을 쐬고 싶은 잠깐의 욕구라 애써 축소 해석했지만 마음 한 편에는 그 사건으로 인해 ‘혼자 뒤집어쓴다’는 의미의 ‘독박’ 육아에 대한 불안이 자리했다.

지난 2월 출산 후, 조리원에서 2주 친정 엄마에게 2주 몸조리를 받고 처음으로 부부와 아이만 남게 된 날이었다. 일요일이었다. 친정엄마 없이 홀로 아이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서른 중반이나 됐지만 태어난 지 한 달 된 어린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두렵게 느껴졌다.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조그만 아이. 이제 막 엄마가 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행히 일요일이라 머리를 맞댈 남편이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날 남편은 며칠 전 손주를 보러오신 시어머니를 터미널에 모셔다드렸다. 돌아오면 처음으로 부부가 좌충우돌하며 아이를 보게 될 터였다. 그런데 오후 12시 시어머니를 배웅하고 나서도 남편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2시간 뒤에야 전화기가 울렸다. 친구를 만나 구로쪽에 있는 휴대폰 매장에 가고 있다고, 친구랑 저녁을 먹고 들어오겠다는 통보였다. 이미 차에는 친구가 타고 있었다. 구로는 경기도의 우리 집에서 서울을 가로질러 가야하는 먼 곳이었다.

그 순간 눈물이 흘러나왔다. 부모님 없이 처음으로 우리끼리 애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하고 있었는데 ‘우리끼리’가 아니라 ‘나 혼자’가 될 줄이야. 긴장이 분노로 바뀌었다. 평소에 사리판단 분명하고 매사 꼼꼼한 남편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실수가 아니라 나 혼자 아이를 안고 전전긍긍하게 될 수많은 날의 서막이었다. 나는 폭발했고 남편은 차마 저녁은 먹지 못한 채 들어왔다.

가끔씩 ‘이 남자가 왜 그랬을까’ 곰곰히 생각을 했다. 남편에게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연애까지 9년째 옥신각신하고 있는 남자의 심리를 혼자서 추측해봤다.

이제 막 아빠가 된 남편에게 육아는 TV에서 쌍둥이 아들들과 놀러 나간 이휘재씨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다. 울고 보채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잔머리를 머리띠로 과감하게 올린 이휘재씨는 아니었다. 그 상상 속에 캠핑 나들이는 있어도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고 극장 관람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상은 없었다. 이벤트만 꿈꿨지 치이는 일상을 견딜 인내심은 키우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 1년 간 남편도 육아에 적응하며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그러나 바라고 고대하던 큰 변화는 올해 나의 복직 이후 찾아왔다. 지난해 아무리 남편을 구슬리고 다독이고 그러다가 화를 내도 안 되던 일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복직 이후 이어진 일요일 근무로 남편의 ‘1일 독박육아’가 시작되면서였다.

처음에는 계속 전화기가 울렸다. “분유 얼마나 줘야해?”, “이유식은 어떤 거부터 줘?”, “언제 와?”, “언제 와?”, “언제 와?”, “빨리 와!!” “왜 안 와!!” 잘 연락하지 않는 9년차 커플의 휴대폰에 오랜 만에 문자 메시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 일요일이 한 달 넘게 이어지자 어느 날부터 다시 조용해졌다. 남편은 알아서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자발적인 변화였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출장을 가도 일에만 바빴던 남편이 ‘1일 독박육아’를 하면서부터는 “애가 보고 싶다”며 자주 전화를 하게 됐다. 일상에서 함께 보낸 시간과 비례해 육아의 기쁨이 찾아온다는 걸 나도 남편도 뒤늦게 깨달았다. 지난해로 돌아간다면 일주일에 하루는 남편에게 아이를 떠맡기고 외출할 텐데 초보맘에게는 그런 지혜와 용기가 부족했다.


이현미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