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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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역량 쏟아부은 컨티뉴엄 ‘몬다비 DNA’ 담은 명작”

[주목 이사람] ‘로버트 몬다비 와인 계승자’ 팀 몬다비 단독 인터뷰

 

하얗고 기다란 손을 지닌 남자 피아니스트. 아주 느리고 섬세하게 건반을 살짝 쓰다듬으며 곡은 시작된다. 단 한 소절만으로 아련한 추억의 한 장면으로 이끄는 영롱한 선율. 영혼을 어루만지는 듯한 아름다운 연주에 갑자기 눈물 한 조각 핑 돈다. 이어 템포는 빨라지고 어느덧 가슴도 희망으로 벅차오른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컨티뉴엄( Continuum)은 바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그대로 닮은 와인이다.

미국 ‘와인의 아버지’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1913∼2008).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의 와인양조 철학은 온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의 둘째 아들 팀 몬다비(Tim Mondavi) 덕분이다. 그는 몬다비 가문의 전통과 유산을 이어받아 오로지 하나의 와인을 빚고 있는데 바로 컨티뉴엄이다. 팀 몬다비가 각별한 의미가 담긴 최신 빈티지인 컨티뉴엄 2013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그를 지난 15일 서울시내의 한 호텔에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2013년 빈티지가 왜 특별할까. “2013년은 아버지가 태어난지 100주년되는 해 입니다. 그 해에는 또 제가 양조팀을 이끌며 와인을 빚기 시작한지 40번째 와인이 탄생했지요. 온전히 우리의 포도밭과 양조시설에서 빚은 첫번째 컨티뉴엄이 탄생한 해이기도 합니다”.  컨티뉴엄 2013 빈티지 레이블에는 이를 기념해  ‘1·40·100’이라는 숫자를 새겨 넣었다.

오퍼스 원을 탄생시킨 로버트 몬다비(가운데)와 프랑스 와인 명가 바론 필립 드 로칠드가 와인 양조를 의논하는 모습. 왼쪽은 와인양조팀을 직접 이끈 팀 몬다비.
팀 몬다비 제공
듣고 보니 팀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동안 몬다비 가족들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와이너리는 로버트 몬다비 형제간의 불화 끝에 2004년 세계 최대 주류기업인 컨스텔레이션 브랜드에 넘어갔다. 안타깝게도 이때부터 가족들은 와인에 몬다비라는 이름을 쓸수없게 됐다. 당연히 1933년부터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나파 밸리를 넘어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와인을 만든 몬다비 가문의 빛나는 전통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낭떠러지 끝에서 팀은 가족 구성원들의 힘을 모았고 결국 2005년 새 와이너리 컨티뉴엄을 설립했다. 당장 포도밭이 없던 팀은 그동안 몬다비 와이너리가 소유했던 토 칼론(To Kalon) 빈야드의 포도를 구입해 와인을 빚었다. 2007년 빈티지부터 나파밸리 프릿차드 힐(Pritchard Hill) 포도밭을 매입해 이 곳의 포도로 컨티뉴엄 일부를 생산했고 비로소 2013년부터 오로지 프릿차드 힐의 포도 100%와 자신의 양조장에서 모든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최고의 와이너리이던 몬다비의 화려한 경력이 2004년에 모두 끝나 버렸지요.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부친을 포함한 가족들은 크게 낙담했어요. 평범한 품질의 와인이 아닌 미국 국가대표급 와인을 만들던 몬다비 패밀리였기에 절망감은 엄청났지요. 하지만 언제 까지나 그렇게 앉아 있을 수 는 없었죠.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은 몬다비의 전통을 잇고자 새출발을 다짐했고 힘을 모아 컨티뉴엄을 세웠습니다.” 

로버트 몬다비가 1919년부터 와인사업을 하던 부친 체사레 몬다비(Cesare Mondavi) 밑에서 30년동안 일하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와이너리를 설립한 것은 53세때다. 팀이 컨티뉴엄으로 새출발한 나이도 53세다. 이 때문에 몬다비 가족에게 53은 새출발을 의미하는 숫자가 됐다. 팀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운명적”이라고 회고했다. 컨티뉴엄 2013 빈티지부터 레이블이 살짝 바뀌었다. 레이블 중간에 새의 그림이 들어갔다. 햇살이 비치는 포도나무를 형상화한 컨티뉴엄 레이블은 딸 키아라(Chiara)의 작품이다. 키아라는 로버트 몬다비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는데 하루는 로버트가 무슨 그림 그리고 싶느냐고 물었단다. 키아라는 “이 포도밭 위에서 날면서 포도밭서 일하는 모든 사람 지켜주는 천사를 그리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키아라는 그때 일을 생각하며 로버트의 모습을 비둘기로 그려 넣었다. “그동안 몬다비 일가는 많은 부침을 겪었지만 컨티뉴엄은 현재 굉장히 순항중이지요. 딸의 말대로 다 부친이 우리를 굽어 살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팀 몬다비 가족들.
팀 몬다비 제공
팀은 이미 오래전부터 몬다비 프리미엄 와인 양조에 직접 뛰어든 베테랑이다. 몬다비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사교성이 뛰어나고 언변이 좋은 장남 마이클은 양조보다 마케팅과 세일즈에 능력을 보였다. 마이클은 주로 보급형 와인에 비중을 두고 사업을 추진했다. 

팀 모다비가 포도를 분류하는 모습.
출처 컨티뉴엄 홈페이지
반면, 팀은 포도밭과 셀러에서 일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대학에서 와인양조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부르고뉴의 유명한 와이너리에서 와인메이커 수련도 받은 그는 1974년 몬다비 와인 양조에 직접 뛰어든다. 이후 와이너리가 매각된 2004년까지 30년동안 몬다비 와이너리의 양조팀을 직접 이끌며 프리미엄 와인을 빚는 와인메이커로 활약했다. 팀에게 몬다비 와이너리를 설립한 부친의 와인 양조 DNA가 그대로 계승된 셈이다. 

실제 그는 몬다비가 세계적인 생산자들과 합작을 통해 빚어낸 명작들의 와인 양조에도 직접 깊이 관여했다. 샤토 무통 로칠드를 빚는 바론 필립 드 로칠드 가문과 오퍼스 원(Opus One)을 탄생시켰다. 또 이탈리아 슈퍼투스칸 오르넬리아(Ornellaia)도 그의 손을 거쳤고 700년 역사의 이탈리아 프레코발디 가문과 빛은 루체(Luce),  칠레 에두아르도 채드윅과 만든 세냐(Sena) 등 이름만으로 가슴 뛰는 명품 와인 양조에 그의 역량이 담겼다. 팀은 “이런 여러 곳의 명품 와인을 빚으면서 풍부한 양조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포도나무가 자라는 땅의 탁월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게 이해하는 충분한 기회를 갖게 됐지요”라고 소개했다.

발효 탱크를 살피는 팀 몬다비.
출처 컨티뉴엄 홈페이지
이처럼 팀은 위대한 와인은 위대한 땅에서 나온다는 확고한 양조철학을 지녔다.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프릿차드 힐이다. 나파밸리 최고급 포도밭인 오크빌 동쪽, 해발고도가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 나파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생산자인 콜긴(Coigin), 브라이언트 패밀리 빈야드(Bryant Family Vineyard), 데이빗 아서(David Arthur) 등의 최고급 생산자의 포도밭이 몰려있다. 경사면의 포도밭은 토양의 깊이가 얇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는 자란 포도는 수확량은 적지만 응집력은 매우 뛰어나 고품질의 와인을 빚을 수 있다. 평지보다 비용이 많이드는 프릿차드 힐을 선택한 이유다. “위대한 와인을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나파밸리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그 땅과 기후에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와인을 빚을 수 있는지 평생에 걸쳐 지속적인 실험했습니다. 그런 노력끝에 선택한 땅이 프릿차드 힐이이지요. 앞으로도 위대한 와인은 경사면의 포도밭에서 나올 것입니다.” 

컨티뉴엄은 ‘계승’이라는 뜻이다. 몬다비 패밀리가 구축한 위대한 양조유산과 선구자 정신을 그대로 이어 세계 최고의 와인을 빚는다는 의지가 담겼다. 다양한 양조 경험을 거친 베테랑 와이메이커가 평생 쌓은 모든 역량을 단 한종류의 와인에 모두 쏟아부었으니 솜씨가 발휘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1등급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와인이 목표이지요. 보르도 1등급 와인의 포도밭 평균 면적의 10분의 1 규모의 포도밭에서 단 한가지 종류의 레드와인만 생산합니다. 컨티뉴엄은 단 하나의 최고 포도밭에서 만들어지는 단 하나의 최고 와인입니다.”  대단한 자부심이다. 

몬다비 와이너리의 양조 철학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팀 몬다비가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계승을 뜻하는 와인 컨티뉴엄(Continuum)을 앞에 놓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양조 인생을 모두 쏟아부은 단 한 가지의 프리미엄 와인만 빚는다는 자부심이 크다.
이제원 기자
컨티뉴엄 2013은 카베르네 소비뇽 66%, 카베르네 프랑 21%, 쁘띠 베르도 9%, 메를로 4%가 블렌딩 됐다. 보르도풍의 블렌딩을 지향하는 나파밸리 와인은 많지만, 카베르네 프랑과 쁘띠 베르도의 비율을 높여 매우 신선하고 다채로운 풍미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탄닌은 풍부하고 질감이 빼어난데다 완벽한 밸런스를 지녀 장기숙성이 가능한 와인이다. 자두, 검은 체리, 로스트한 커피 풍미와 길고 복합적인 피니시가 인상적이다. 풍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디켄딩을 해야한다. 

레드와인은 보통 침용기간이 짧은 경우 2주인데 컨티뉴엄은 훨씬 긴 25∼35일이다. 복합미가 뛰어난 위대한 와인이 탄생하는 배경이다. 또 발효는 스테인리스 대신 시멘트 탱크를 사용한다. 미네랄을 더 정확하고 우아하게 와인에 전달하기 위해서란다. 미국 고급와인들은 100% 새오크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컨티뉴엄은 포도밭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기 위해 새오크 사용의 비중을 치밀하게 계산해 적절히 조절한다.

“와인은 문화이고 문화는 대를 이어 전수되지요. 몬다비 가문을 넘어서 세계 와인의 유산을 후대에 물려준 거인의 어깨가 되기 위해 마지막 역량을 모아 와인을 빚을 작정입니다.” 로버트 몬다비를 계승한 팀 몬다비의 와인이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