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벤저스’나 ‘배트맨’ 시리즈 등 할리우드 히어로물을 쫓아다니며 굳이 남의 영웅에 열광할 필요가 없다. ‘트랜스포머’의 20여분이나 지속되는 깡통 소음을 견뎌내면서까지 대리만족하지 않아도 된다. 느낌이 확연하게 다른 ‘한국형’ 히어로물의 등장이 유독 반가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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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형 다크 히어로 ‘탐정 홍길동’은 악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통해 관객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해소한다.>> |
여기에 결핍과 결함이라는 요소를 가미해 ‘한국형 다크 히어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관객은 정의로운 히어로보다 현실의 고통을 덜어줄 히어로를 원한다. 이 답답한 세상을 날려버릴 그를 간절하게 기다려 왔다. 비록 선하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가 탐정 홍길동이다.
사건 해결률 99%, 악당보다 더 악명 높은 탐정 홍길동(이제훈)이 20년간 찾지 못했던 사람이 있다. 어머니를 죽인 원수 김병덕(박근형). 오랜 추적 끝에 드디어 그에게 복수하려는 순간, 그는 간발의 차로 누군가에게 납치된다. 그의 집엔 두 손녀, 동이(노정의)와 말순(김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할아버지를 찾아 달라는 두 자매를 데리고 김병덕의 실마리를 쫓던 홍길동은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비밀조직 광은회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홍길동은 차가운 눈빛의 피도 눈물도 없는 광은회의 실세 강성일(김성균)과 숨 막히는 대결을 펼친다.
영화의 강점은 두 가지다. 악당보다 오히려 악명 높은 탐정이 다행히 우리편에 서서 더 나쁜 놈들을 청소한다는 것, 그리고 잔잔한 웃음거리를 끊임없이 던지면서도 관객이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독특한 화면구성과 색채로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 ‘씬 시티’를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비주얼과 만화적 세계관도 매력적이다.
전통적인 필름누아르 요소를 적용했다. 젖어 있는 거리, 구름과 안개, 파스텔톤의 차창 밖 풍경이 그렇다. 1950∼60년대 하드보일드 탐정물을 한국영화에 맞게 가공했다. 촬영이 불가능한 장면만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하는 일반 영화와 달리 홍길동이 자동차를 몰고 가는 장면의 배경과 차량 등을 모두 CG로 재구성해 시각적 효과가 두드러진다. 주행을 시작한 뒤 헤드라이트를 켜는 장면을 공중에서 내리찍는 부감촬영으로 잡았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해 영화 속 만화적인 분위기를 체험하도록 도우려는 감독의 배려다.
1980년대 초반쯤이 시간적 배경이다. 신군부가 조성한 비리와 부조리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반부에 이르면 관객은 왜 주인공의 캐릭터를 그다지 선하지 않은 인물로 설정했는지를 알 수 있다. 처절한 응징을 통한 악의 완벽한 일소를 위해서다. 썩은 사회를 향한 무자비한 총질이 이어진다. 총탄세례를 받는 대상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철저하게 응징해야 할 악당일 뿐이다. ‘갈겨버린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총격 신은 객석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시원스레 해소해 준다. 홍콩스타 저우룬파(주윤발)가 ‘첩혈쌍웅’에서 쌍권총으로 악당 한 명당 십여 발씩 쏘아 응징하며 ‘통쾌함’을 선사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연기의 신’ 박근형은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영화에 무게감을 부여하며 균형을 잡는다. 악당 역은 역시 김성균이 맡아야 제 맛이 난다. 특히 히어로물에서는 매력적인 악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의 안경 알에 비치는 하얀 반사도 카리스마적이지만, 태광정비소 장면에서 아무런 대사를 안 하는데도 조여오는 긴장감은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의 탁월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배트맨의 ‘조커’를 떠올릴 만하다. 속편에서도 그가 더 강한 악당으로 등장하길 바란다.
보다 세련된 2편과 3편이 연이어 제작되길 기대할 만하다. ‘탐정 홍길동’은 ‘다 똑같아. 그게 그거야’라는 말이 쏙 들어갈 만큼 새로운 지평을 연 공로가 크다. 5월 4일 개봉.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