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최대 가해업체인 영국계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이날 레킷벤키저 최고경영자(CEO) 라케슈 카푸르 등 이사진 8명을 살인·살인교사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옥시가 2001년 독성 화학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을 제조·판매한 데 대해 영국 본사도 책임이 있다”며 “1998년 유럽연합(EU)이 시행한 독성물질 안전관리 제도를 왜 한국에서는 시행하지 않았는지, EU와 한국에 ‘이중잣대’를 적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검찰이 영국에 있는 옥시 본사를 압수수색하거나 본사 임직원의 신병을 확보하는 등 강제조사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한·영 양국 법무부의 협조 아래 우리 검찰이 영국 측 관계자들의 진술을 듣는 형태로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 당시는 옥시가 영국 본사에 인수되기 전인 만큼 독성물질 제조와 관련해 본사의 책임을 묻긴 어렵다”며 “아직까지 본사에 형사책임을 지울 만한 단서나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사를 하다 보면 본사의 혐의점을 찾을 수도 있는 만큼 앞으로 수사를 더 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귀 잡힌 CEO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사건 발생 5년 만에 사과한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대표의 귀를 잡고 있다. 이재문 기자 |
그동안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 첫 개발과 제조 경위 파악에 주력해 온 검찰 수사는 이제 판매 부문 관련자들로 옮겨가고 있다. 수사 초점은 옥시가 소비자들의 민원 제기와 항의로 제품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으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판매를 강행했는지 여부를 밝히는 데 모아진다. 제품의 부작용을 인식하고서도 제품 회수나 판매 중단 등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과실치사 또는 과실치상 혐의가 성립한다.
옥시는 2001년 초 독성 화학물질 PHMG가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호흡 곤란 등 부작용을 호소하는 항의성 민원이 지속적으로 옥시 측에 전달됐다. 하지만 옥시는 사실상 이를 무시하고 보건복지부가 폐 손상 사망 등과 가습기 살균제의 인과관계를 확인해 회수 조치에 나선 2011년 중반까지 제품을 계속 판매했다. 검찰은 10년간 옥시가 시중에 판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453만개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전수조사에 나선 만큼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피해가 추가로 드러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개발과 출시가 이뤄진 2001년 당시 옥시를 이끈 신현우(68) 전 대표의 형사처벌 수위에 이목이 집중된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제조 과정의 문제이고, 제조 당시 최고 결정권자는 신 전 대표”라고 말해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함을 내비쳤다. 검찰은 조만간 신 전 대표를 다시 불러 조사한 뒤 영장 청구 수순을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대표는 2005년부터 10년 넘게 맡아 온 풀무원 사외이사직에서 이날 전격 사퇴했다.
김태훈·김건호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