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거리와 사찰에 연등이 내걸리며 석가의 가르침이 전해지고 있다. 연등행사의 축제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오는 14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등 축제에 참여하는 불자들과 일반 시민 등은 줄잡아 100여만명을 헤아린다.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은 서울 종로구 조계사 마당에 연등으로 불교의 소망을 세상에 내놓곤 했다. 올해도 ‘미래 100년 총본산 성역화’를 내놓았다. 조계사 주변 수십만평을 성역화하는 ‘불사’의 원만 회향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등으로 불교의 소망을 표시하는 관행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8월27일 서울 광장에서 ‘이명박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를 봉행하면서 수천 개의 연등으로 ‘OUT’ 글자를 펼쳐 보였다. 불교 차별에 대한 저항 의지였다. 예컨대 2012년엔 ‘우리도 부처님 같이’, 2013년 ‘붓다로 살자’, 2014년 ‘和이팅 코리아’, 2015년 ‘평화로운 마음 향기로운 세상’이었다. 문구엔 시대적인 흐름과 의미를 담았으며 사회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문구가 없던 해도 있었다. 문구를 내놓지 않은 것 그 자체로 시대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의미를 던졌다.
1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 마당에 내걸린 형형색색의 10만여개 연등이 해가 기울면서 빛을 발하고 있다. 올해 연등 문구는 ‘미래 100년 총본산 성역화’이다. 조계종 제공 |
“초라한 등불이지만 저에게는 큰 재산이고, 제 마음까지 모두 바치는 것입니다. 이 등을 켠 공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도 다음 세상에 태어나 성불하게 해주십시오.” 새벽이 되니 등불은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지만 난타의 것은 더욱 밝게 빛났다. 왕과 귀족들이 밝힌 호화로운 등도 예외 없이 꺼졌지만 난타의 등불은 그대로였다. 석가를 따르던 제자 아난이 등불에 다가가 옷깃을 흔들어 끄려 했으나 꺼지지 않았다. 등 뒤에서 미소짓던 석가가 말했다. “아난아,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그 등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여인이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여인은 30억겁 뒤에 영생해 수미등광여래가 되리라.” 난타는 그길로 석가를 따라 출가해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연등의 역사는 신라 시대에서 유래된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문왕 6년(866) 왕이 황룡사로 행차해 간등(看燈: 연등을 보며 마음을 밝히다)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시대에는 연등 행사가 국가 행사로 치러졌다. 불교를 억압한 조선에서는 국가적인 연등회는 중단됐지만 민간의 사월 초파일 연등회는 더욱 성행했다.
현대식 연등회는 1955년에 시작됐다. 1975년에는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제등 행렬 참가자가 대거 늘어났다.
연꽃 모양이 가장 많은 연등은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는 방법의 하나다. 연꽃이 불교 상징화로 자리매김한 기원은 학술적으로 분명하진 않다. 다만 인도에서 불교가 중국을 통해 신라시대 한반도로 전래되면서 연꽃이 함께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꽃은 불교의 사상과 상통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늪이나 연못의 진흙탕 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워내 자신의 청정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깨끗하여 비록 나쁜 환경 속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본성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불교의 교리를 대변하는 것 같다. 석가 탄생 때 모친인 마야 부인 주위에 오색의 연꽃이 만발해 있었다는 설화도 전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