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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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소개팅 시켜달라고 하지 마라, 진짜"

1차는 파스타와 피자가 올라간 테이블. 2차는 약간의 안주와 맥주. 이 정도면 괜찮았다. 뻔한 시나리오와 대사가 이어졌지만 그게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니니까. 문제는 이게 장편 대작이 되느냐 방학특집 단편드라마가 되느냐다.

안타깝게도 결말은 방학특집. 세 번을 더 만났지만 A씨의 마음은 기울지 않았다.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상대방이 딱히 싫은 건 아니었지만, 계속 만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소개팅은 4부작 단편드라마로 결말이 났다. 일주일에 이틀씩, 딱 2주 분량이다.

A씨는 ‘주선자’ 때문에 만난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양측을 모두 아는 주선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상대방을 좀 더 본 것 같았다. 상대방 속마음도 자기와 같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사람도 주선자 때문에 자기를 만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으로라도 남을 걸 그랬나? A씨는 머리를 흔들더니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배우 문소리, 김태우 주연의 멜로영화 '사과' 중 한 장면



“소개팅요? 시켜주지 마세요. 차라리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을 알려주세요.”

열 번이나 넘게 지인들에게 소개팅을 주선했던 나모(29·여)씨가 말했다. 그의 소개팅 주선 통산전적은 ‘15전 2승13패’. 2번은 커플을 성사시켰고 나머지는 ‘빠이빠이’였다.

나씨의 사전에 더 이상 '소개팅 주선'이란 없다. 그는 “옛말에 ‘잘 되면 술이 석 잔, 못 되면 뺨이 석 대’라고 했다”며 “뺨만 수없이 맞았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울려 퍼지는 ‘외롭다~ 외롭다’ 노래에 소개팅 시켜줬더니, 돌아온 건 ‘참가자’들의 화살뿐이었다.

자신을 ‘월하노인’이라 말한 나씨는 “‘이 둘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이어준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문제는 소개팅으로 만난 이들이 달콤한 열매를 거둘 확률은 극히 낮다는 것”이라고 했다. 둘 다 별로 거나 △ 여자가 상대방을 마음에 안 들어 하거나 △ 혹은 그 반대다.

나씨에게 돌아온 소개팅 참가자들의 답변은 “내가 그것밖에 안 돼?” 혹은 “왜 이런 사람을 소개해줬어?”라는 원망 섞인 말이었다. 좋은 마음에 이벤트를 열어줬다가 지인의 화만 돋운 꼴이 됐다.

나씨는 “학교 남자 선배와 친구를 연결해줬다”며 “신사 같았던 그 선배는 ‘나름 비싼 저지’를 입고 나오는 돌발상황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는 “밤늦게 전화를 한 것도 모자라, 비싼 초밥집에 친구를 데려가서는 우동만 시켰다”고 어이없어했다. 나씨의 선배는 여성에게 “맥주 한 잔 사시죠”라며 비싼 펍에 가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결과? 뻔한 것 아닌가.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개팅 본색남’ 등의 제목으로 퍼진 게시물. 진짜라고 해도 씁쓸하고, 꾸민 이야기라고 해도 씁쓸하긴 마찬가지다.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두 번째는 조금 나았다.

나씨의 학원 동생을 만난 그의 동기는 ‘당일’에 많은 친절을 베풀었다. 음식도 일일이 접시에 담아줬고, 심지어 헤어지는 길 정거장 떠나는 버스를 잡기 위해 헉헉거리며 뛰어가기도 했다. 드라마에 나올 장면 아닌가? 당연히 나씨의 동생은 ‘아, 이 남자가 내게 마음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씨의 동기는 ‘애프터’를 신청하지 않았다. 여성은 “왜 내게 연락이 없느냐”며 애타기 시작했다. 이 둘을 본 나씨는 ‘날 보고 동기가 잘해준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겉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나씨는 “‘네가 그 사람 스타일이 아니었나봐’라고 돌려 말했다”며 “아주 난감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다고 나씨의 소개팅 주선이 모두 실패한 건 아니었다. 앞서 2승을 언급했지 않나.

하지만 나씨의 주선으로 만난 남녀는 이들이 ‘운명’에 이끌려 만났다고만 생각했을 뿐, 결코 나씨 덕분에 만나게 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색한 첫 만남에 두 사람 사이를 좁히려 분위기를 띄우느라 몸짓발짓한 나씨만 헛수고한 셈이었다.

“누구는 소개팅을 잘해줘서 양복 받았다던 말도 있는데, 그건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라며 “양복은 둘째 치고 ‘네 덕분에 좋은 사람 만났어. 고마워’라는 인사라도 한마디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나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술 석 잔은 무슨…힘만 뺐다”고 말했다.

그러니 나씨는 외로움 타는 이에게 소개팅 대신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을 알려주라고 외친다. 결론은 하나. 자신의 짝은 자기가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국내 1위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 3월18일부터 4월10일까지 20~30대 미혼남녀 702명을 대상으로 소개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7명이 소개팅 전 SNS 등을 통해 상대의 정보를 확인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없다’는 31.2%(남 33.7%·여 29.2%)로 나타났다.

소개팅 전 가장 궁금한 상대방 정보는 ‘외모(33.6%)’와 ‘평소 생각과 사고(26.9%)’로 파악됐다.

성별에 따라서는 남성은 ‘외모(42.3%)’, ‘평소 생각과 사고(22.4%)’, ‘정치성향(13.5%)’ 순이었으며, 여성은 ‘평소 생각과 사고(30.5%)’, ‘외모(26.7%)’, ‘과거 연인관계(11.8%)’에 대한 궁금증이 높았다.

정치성향에 대한 궁금증은 여성(5.9%, 6위)보다 남성(13.5%, 3위)에게서 매우 높게 나타났다.


* 이번 기사는 ‘소개팅’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제보해온 한 독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구성되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나 흔치 않은 ‘소개팅 경험담’이 있다면 언제든 이메일로 제보해주세요! *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