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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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새들처럼' 작곡가 지근식, 22년만에 컴백 "서태지 나와 가수들 다 망했죠"

 

“무소가 코뿔소하고 같은 말이래요. 뿔 달린 짐승은 모두 대칭으로 2개씩 있는데 왜 코뿔소만 외뿔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혼자가 된 내 처지와 비슷하더라구요. 그래서 얼른 노래로 만들었죠.”

가수 변진섭과 오랜 친구이자 히트곡‘새들처럼’을 작곡한 싱어송라이터 지근식(52)이 22년 만에 새 싱글앨범 ‘무소의 뿔처럼’을 들고 가요계로 돌아왔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지금 새 음반을 들고 가수로 나온 이유가 뭘까. 최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여태껏 지낸온 얘기와 오랜만에 앨범을 내게 된 이유를 들어봤다.

“요즘 나오는 노래 중에 십중팔구 안전빵은 ‘사랑타령’이에요. 왜 유행가가 ‘사랑’밖에 없을까 정말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어요.”

지근식은 “대중가요는 ‘사랑’이 아닌 쓸 소재가 너무 많다”면서 “팝송을 들어보면 굉장히 많은 소재와 주제가 있다. 가요도 꼭 사랑 노래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50줄 가까운데 니를 못잊겠느니 하는 가사는 진부하다”면서 “소재를 뭘로 삼을까 하다가 현재 내 입장을 그대로 얘기하면 되겠다 싶어 ‘무소의 뿔처럼’이란 곡을 만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왜 이제서야 다시 나오게 됐느냐는 물음에 그는 대뜸 “‘응답하라1988’(이하 ‘응팔’) 때문”이라고 답했다. 변진섭이 부른 ‘새들처럼’이 응팔 OST곡으로 팬들의 입에 다시 한번 불려지면서 텅빈 통장에 저작권료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는 것.

‘새들처럼’을 작사·작곡한 저작권료가 큰 돈은 아니지만 갑자기 들어오면서 다시 음악작업을 하는데 용기와 힘을 얻었다. 또 주춤했던 변진섭이 다시 가수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생기가 돌아 탄력도 받았다.

“처음 음악할 때부터 진섭이랑 친하게 지냈어요. 그러다 진섭이는 어느날 ‘새들처럼’ ‘홀로된다는 것’으로 톱스타가 됐죠.”

지근식은 같이 음악을 좋아했던 한동준·양진석·김한년과 함께 4명으로 ‘노래그림’이라는 통기타 그룹을 결성해 1987년 ‘월계가요제’에 출전했으며 그해 레코드회사 ‘효성음향’에서 LP판을 내고 정식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그룹을 만들고 판까지 냈지만 다른 멤버들이 군대가고 하는 통에 팀은 금세 해체됐다.

“혼자 남아 신촌 그레이스백화점, 명동 등지를 돌며 혼자 음악할 때 박학기·변진섭 등을 만나 알게 됐어요.” 

그는 “같이 활동하면서 진섭이가 이름도 없을 때인데 정식 판을 내겠다고 해 곡을 줬다”면서 “그게 ‘새들처럼’하고 ‘내게 줄수 있는건 오직 사랑뿐’ ‘너무 늦었잖아요’ ‘그대에게’ 였는데 빅히트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밴드 ‘다섯손가락’에서 활동하던 하광훈도 ‘홀로된다는 것’등 5곡을 줬는데 그게 다 히트돼 변진섭은 하루아침에 대형가수로 떠올랐다”고 부연했다.

 

“그 후에도 2집때 제가 직접 만든 노래 4곡을 줬는데 ‘저하늘을 날아서’와 ‘당신의 장난감 당신의 인형’만 히트됐었죠.”

지근식은 “그후 진섭이는 레코드회사를 떠나 혼자 제작한다고 할 즈음 92년에 서태지가 나와‘난 알아요’로 가요계를 초토화시키고 가수들은 다 망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서태지가 나오기 직전에는 작곡가들도 싱어송라이터 개념으로 판을 내고 가수로 활동을 많이 했어요. 이승철 노래 작곡가 박광현이라든지, 이선희 노래 작곡가 송시현도 데뷔하기 시작했죠.”

지근식은 이들과 더불어 89년 1집 음반 ‘파란하늘 아래’를 비롯해 91년 2집, 94년 3집까지 발표한 후 별 반응을 얻지 못해 음악을 놓고 살다가 이번에 다시 나왔다. 

“지난해 말 ‘응팔’에서 ‘새들처럼’이 다시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변진섭의 활동도 활발해져 제가 진섭이를 찾았어요. 같이 노래 좀 해볼려구요.”

지근식은 이번 신곡 ‘무소의 뿔처럼’ 외에 또 다른 수록곡 ‘마이 베스트 프렌드’를 변진섭과 함께 듀엣으로 불러 싱글앨범에 담았다. 

‘마이 베스트 프렌드’는 스트링 반주로 진행되다가 어쿠스틱 버전으로 전환되는 발라드곡으로 변진섭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지근식의 부드러운 보이스가 조화를 이뤄 리스너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타이틀곡인 ‘무소의 뿔처럼’도 독특하게 만들어졌다. 전주와 후렴구가 뒤바뀐 것처럼 처음부터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차고나가는 지근식의 가창력이 돋보인다.

지근식은 “일부러 곡을 그렇게 만들었다”면서 “모든 추세가 다 스피드화 돼서 30초 이내에 곡이 좋다는 걸 알리지 않으면 외면을 당해 그런 방식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무소의 뿔처럼’은 멜로디가 아주 대중적으로 쉽게 다가오는데다 자유를 갈망하듯 자연과 동물을 소재로 써 들을수록 흥을 돋구며 지근식이 싱어송라이터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추영준 선임기자 yjch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