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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는 봉?… 상가 관리비·계약 횡포에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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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집합건물법 민사소송만 가능… 시대상 반영한 법률 개정 시급
50대 여성 약사인 A씨는 1994년 서울 마포의 한 상가 건물 1층에 약국을 열었다. 상가 규약과 계약서는 4층 규모인 이 건물에서 ‘A씨만 약국업을 할 수 있다’는 독점적인 지위를 보장했다. 그러나 2003년 이 상가에 약국 3곳이 추가로 들어설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A씨는 해당 약국업자들을 찾아가 “이 건물에서는 우리 약국만 영업을 할 수 있다”며 계약서를 내밀었지만 “몰랐다”, “어쩌라는 거냐”는 반응뿐이었다.

A씨가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민사소송밖에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약국 3곳을 상대로 한 3년에 걸친 소송에서 이긴 A씨는 소송 기간의 손해까지 배상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해당 약국들은 이미 충분한 이익을 챙긴 뒤라 아쉬울 게 없었다. 상가 안에만 병원이 4개나 있고 주변에 유동인구도 많은 곳이라 애초부터 2∼3년간 반짝 벌기로 마음 먹고 입주했던 것이다.

한동안 잠잠하나 싶더니 지난 2월 또 다른 약국업자가 A씨의 속을 썩였다. A씨는 “처음에는 상가에서 건강식품을 판매한다고 들어와서는 갑자기 업종을 바꿔 약국을 개업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이번에도 가만 있지 않고 법에 호소했다.

법원은 지난달 20일 해당 약국에 대한 A씨의 영업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이 잇달아 A씨에게 유리한 판정을 해준 것은 계약서에 명시된 독점권을 인정해주는 민법의 효력 때문이다. A씨처럼 상가 영업권을 둘러싼 분쟁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성이 좋은 영업 장소나 투자처를 찾는 수요가 엄청난 데 비해 목이 좋은 상권에 위치한 상가는 한정돼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일부 조직폭력배가 개입돼 기존 사업자를 협박하거나 업무를 방해해 사업을 접게 하는가 하면, 브로커에게 속아 권리금과 계약금을 날리는 일까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상가를 포함한 집합건물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 초 전담 조직을 만든 서울시 측은 “은퇴하는 베이비부머가 퇴직금으로 상가를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 신고나 민원이 하루 15건 이상 접수된다”고 밝혔다.

이는 현행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자체가 부실한 데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많다.

이 법은 민법상 권리를 보장할 뿐 위반 시 처벌하거나 공공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우 회계 부정이나 비리에 대한 민원을 접수하면 감사를 실시하고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한 ‘주택법’과 대조적이다.

특히 1984년 집합건물법이 제정된 시기와 달리 지금은 집합건물의 종류도 오피스텔과 상가, 주상복합 등으로 다양해졌고 규모도 수백가구를 헤아릴 만큼 커져 대대적인 법률 손질 필요성이 커졌다.

앞서 법무부도 2012년 말 일부 법개정을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집합건물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 분쟁을 해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공의 개입이나 중재와 관련한 법률적 근거가 없어 별 도움이 안 되고 있다. 이미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도로 지난해 5월 발의된 집합건물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이 의원은 “오피스텔과 상가의 관리비 비리나 계약 분쟁이 난무하고 있다”며 “서민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공공이 개입할 근거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전문인 최광석 변호사는 “법이 30년 넘게 제자리여서 계약 당사자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며 “상가 분양·매매 계약을 진행할 때 ‘다른 점포는 이 업종을 할 수 없다’, ‘업종 지정에 대한 부분을 다른 상가에도 주지시키겠다’는 등의 지위를 최대한 명백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