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상시 청문회’가 행정력을 마비시키거나 정부 발목을 잡는 ‘흉기’로 악용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근거 있는 걱정이긴 하지만, 또 다른 이유로 국회의 권한 강화가 반갑지만은 않다. 국회가 행사하고 있는 입법 권한에 걸맞은 책임과 신뢰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시 청문회? 남용하면 정치공세의 수단이 되겠지만 잘 쓰면 국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보약도 될 수 있다. 내기를 건다면 어느 쪽에 걸겠는가. 같은 칼도 요리사가 들면 훌륭한 요리가 나오고, 강도가 들면 사람을 상하게 한다. ‘상시 청문회’란 칼을 쥔 국회는 요리사인가 강도인가.
김기홍 논설실장 |
국회의원은 200가지가 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일반 국민은 죽었다 깨어나도 가질 수 없는 특권을 수백개나 누리면서도 단 한 개도 포기하지 않고 움켜쥐고 있다. 특권을 내려놓겠다던 수많은 다짐은 공염불이 됐다. 국민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겠다는 공허한 다짐 말고 그많은 특권 중 하나라도 내놓는 결단을 보여준다면 상시 청문회가 일하는 국회를 만들 것이라는 주장을 믿어주겠다.
국회 수준이 떨어진다고 청와대가 상시 청문회에 지레 겁 먹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만지작거릴 필요는 없다. “총선 민의를 짓밟는 것”이라든가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등의 야당 반발 때문이 아니다. 거부 카드를 들이밀어 봐야 실익이 없다. 모양만 우스워진다. 국회로 돌려보냈다가 새누리당 비박까지 가세해 통과시키는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 그냥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야당이 횡포를 부리기로 작정하면 청문회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야당은 과반 의석과 함께 국회 운영권을 접수했다. 수많은 무기를 쥐고 있는 야당에게 상시 청문회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덤으로 생긴, 적당한 때에 써먹을 수 있는 괜찮은 연장 정도일 뿐이다. 그리 흔쾌하진 않더라도 야당의 양식을 믿어보는 쪽으로 정리하는 것이 속을 덜 끓이는 길이다.
청와대와 친박 인사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상시 청문회 따위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자신만의 세상을 고집하다가 외부 세계와 고립되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사람들은 4·13 총선 뒤 청와대 담장 밖 세상이 바뀐 것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에서 지고도 “반성한다”든가 “책임을 통감한다”든가 하는 의례적인 한마디도 없다. 대통령 눈치나 살필 사람을 비서실장으로 앉히고 바깥 세상서 인정도 받지 못하는 정무수석을 끼고 돌고 있다. 친박들은 자신들끼리 똘똘 뭉쳐 어찌어찌 버티고 있으면 옛말 하며 지낼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태우 대통령과 민정당이 26년 전 김영삼·김종필과의 3당 합당을 결행한 것은 여소야대 정국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다. 위기를 정면돌파해 기회를 만들려는 노태우와 민정당은 달라진 세상에 발상의 전환으로 맞섰다. 그런 결기, 창조적 국정 운영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선 보이지 않는다. 일주일 뒤면 마침내 열리는 여소야대의 새 세상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김기홍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