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와 지호는 2학년 여중생이다. 극은 두 사람을 막 삶이라는 수조에 던져진 고등어에 빗댄다. 경주가 지호에게 말한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서, 잡히면 바로 까무러쳐 죽어버린대. 수조 속에 살아 있던 애들도 침 맞고 마취된 애들이래. 죽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살아 있지도 않을 정도로만 사는 거야. 그래야 수조 속에서 안 미치고 살 수 있으니까.”
경주와 지호는 아직 마취가 듣지 않은 고등어다. ‘죽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상태’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중이다. 홀로 파닥파닥대던 두 소녀는 친구가 되고 통영으로 무작정 고등어를 보러 간다. 극의 뼈대는 새로울 것 없어 보이지만, 이를 풀어내는 대본·연출·연기가 뛰어나다.
여성 관객이라면 특히 경주와 지호의 미묘한 우정에 공감할 법하다. 컬트팬을 거느린 영화 ‘여고괴담2’의 밝고 건강하고 가벼운 버전이랄까. 지호는 겉보기에 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속에서는 수천개의 말들이 폭발하듯 터지고 있다. 외로운 지호의 눈에 늘 하얀 헤드폰을 끼고 홀로 앉은 경주가 들어온다. “활짝 웃는 모습이 라임 한 조각을 넣은 사이다처럼 포르르 상쾌하지만 잘 안 웃는” 소녀다. 한마디로 여학교 교실에 한 명쯤 있을 법한 외로운 늑대형. 지호는 경주를 남몰래 동경하다가 친구하자고 쪽지를 보낸다.
연극의 백미는 고등어잡이 장면이다. 통영으로 내달린 두 소녀는 고기잡이 배에 떼쓰듯 매달려 밤바다로 나간다. 배의 갑판에 수백 마리의 고등어가 쏟아진다. 소녀들이 고등어떼와 함께 퍼덕인다. 순간 생의 환희가 터져나오는 듯하다. 객석에도 소금기를 머금은 상쾌한 바람이 밀려온다. 한 번의 외유로 삶에 혁명이 일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배에서 내린 소녀들은 한 뼘 성장해 있고, 소녀들과 밤바다를 가른 관객 역시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소녀들의 성장담은 단순히 청소년기에 한정된 이야기로 머물지 않는다. 성인에게도 삶은 여전히 바다와 횟집 수조를 오가고, 자신이 마취된 고등어는 아닌지 수시로 회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호를 연기한 배우 정지윤은 우유 냄새가 배어나는 듯 귀여운 여학생을 잘 살렸다. 겨우 두 번째 연극 출연작인데 깊은 인상을 남긴다. 경주 역의 정새별은 과하게 ‘폼생폼사’하지 않으면서 서늘한 반항아를 균형감 있게 표현한다. 해설자, 교사, 어부, 친구를 오가는 ‘멀티맨’ 역할의 세 배우는 그야말로 ‘일당백’이다. 작가로서 첫 데뷔작을 내놓은 배우 출신의 배소현과 이래은 연출의 이름도 기억할 만하다.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29일까지 공연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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