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223조7000억원이다. 통계청의 올해 추계인구 5080만1405명으로 나누면 국민 1인당 평균 2408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게 전부인 것도 아니다. 가계신용은 순수 일반가계 부채 통계로, 여기에 소규모 자영업자(개인사업자) 부채 243조7000억원(3월말 기준)을 더하면 실질 가계부채는 1467조여원으로 뛴다.
가계부채는 진작에 임계점을 넘었다는 게 중론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비율이 작년 말 기준 170%에 육박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130%중반대다. 그럼에도 증가세가 꺾이지 않는 것은 빚 수렁에 빠져 삶을 유지하는 악순환에 빠진 가계의 단면을 보여준다. 지난 10여년은 성장률 하락세와 가계부채 증가세가 교차하는 흐름의 연속이었다. 역대 정권별 가계부채 증가폭을 보면 노무현정부 5년 200조7000억원, 이명박정부 5년 250조8000억원, 박근혜정부 3년3개월 307조5000억원이다. 해당 기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48%→ 3.2% → 2.93%로 하향선을 그렸다. 소득이 아니라 부채로 내수를 떠받치는 흐름이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올해 들어 은행 여신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가계가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 주택담보대출 심사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서 대출 수요가 은행에서 2금융권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밀려난 저신용·저소득 가계가 제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저축은행의 일반대출금리 평균은 연 11.56%로 예금은행 대출금리 3.50%보다 3배를 훌쩍 넘고 상호금융사(3.96%), 신용협동조합(4.66%), 새마을금고(3.95%)도 은행보다 높다.
그럼에도 가계부채 증가세는 소비여력을 줄이면서 한국 경제에 커다란 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이준협 연구위원은 “현재 가계부채의 가장 큰 문제는 소비가 위축되고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채무불이행자로 추락할 가능성”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장관 출신 K씨는 최근 사석에서 “한국경제 문제의 본질은 과부채”라며 “그 중심에 가계부채가 있다”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