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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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어느 군 지휘관의 한탄 "난 군인이 아닌 학교 선생님"

한미 장병들이 81㎜ 박격포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요즘 젊은 병사들을 대하다 보면 학교 선생님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선 육군 부대에서 지휘관으로 근무하는 군인의 한탄이다.

이 지휘관의 한탄은 최근 국방부가 2020년대 ‘인구 절벽’에 대비하기 위해 의경 등 병역특례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현역 입대 자원 확보 방법을 둘러싼 논란과 맥이 닿아 있다. 또한 군 조직과 우리 사회의 숨은 병폐와도 직결되어 있다.

국방부는 2만여명에 달하는 병역특례자를 현역으로 입대시키고 징병검사에서 현역 판정률을 90%로 끌어올리면 인구 절벽에 따른 병역 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공계와 과학기술계는 인재 유출 위험 등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군은 징병검사에서 체질량지수(BMI) 등 현역 판정 기준을 완화해 현재 85% 정도인 현역 판정률을 9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실 자원을 억지로 입대시키면 군대 부적응자를 양산해 병영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징병검사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주장으로, 군대 부적응은 사회적 문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 현역 판정률 높이는 병역특례 대책 논란

군 당국이 2020년쯤 징병 신체검사에서 현역 판정 비율을 9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병역 자원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국방부가 발표한 병역 특례제도 폐지 등 관련 대책의 일환이다.
교관의 지도 하에 수류탄 투척 훈련을 실시하는 훈련병

현역 판정률 조정은 체질량지수(BMI) 등 현역 판정 기준을 완화해 현재 85%가량인 현역 판정률을 90% 이상으로 높이는 방식이다. 보충역인 4급 판정 인원은 줄어들고 현역 입영 대상이 늘어나 부족한 병력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게 된다. 지난해 국방부는 입영 적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현역 판정 기준을 강화했다. 하지만 20대 남성 인구가 줄어 병력 부족이 예상되자 이를 다시 완화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보충역 자원을 현역으로 무리하게 입대시킬 경우 자살 등 군 복무 부적응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더민주 백군기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군 부적응자를 위한 ‘그린캠프’ 입소 병사는 2012년 2582명에서 2013년 2657명, 2014년 3132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린캠프는 복무 부적응 병사들을 입소시켜 상담 등을 통해 군 생활에 적응토록 하자는 취지에서 설치됐다. 1주차에 미술·웃음·음악치료와 음식만들기, 2주차에 분노조절 교육과 사회봉사 활동 등 과정을 밟게 된다. 하지만 그린캠프로는 군 복무 부적응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 “복무 부적응 근본 원인은 따로 있어”

현역 판정률 상승이 부실 자원을 입대시켜 군 복무 부적응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군 당국은 “그렇지 않다”고 일축한다.

군 관계자는 “징병 신체검사에서는 체질량지수 외에도 정신적인 부분까지 다 검사해서 현역 판정 여부를 결정한다”며 현역 판정률은 체질량지수로 조정하므로 판정률이 90%가 되어도 군 복무 부적응자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뢰제거작업중인 장병들

하지만 각 부대에서는 군 복무 부적응으로 고통받은 병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부대 지휘관들은 “문제 있는 자원을 신체검사에서 걸러내지 못한다”고 불평하고, 병무청은 “검사 결과 문제는 없다”고 말한다. 어찌된 일일까.

병무청에서 실시하는 징병검사에서는 현역으로 판정될 만큼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자대 배치 이후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등 환경 변화에 따른 부적응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질 수 있다고 군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군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은 입대 전 스마트폰을 즐겨 사용한다. 집안에서 자녀가 한 명뿐인 외둥이 가족이 많아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군에서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사용이 제한되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 여기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한국정보화진흥원과 함께 지난해 스마트폰 및 인터넷 이용자 1만850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중독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3명이 스마트폰 중독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젊은이들이 군에 들어올 경우 금단 증상으로 인해 군 생활에 장애를 겪을 수 있다.

사회성 역시 마찬가지다. 카카오톡 등 디지털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하면서 군에서처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며 배려하는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지 않은 젊은 신병들은 인간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는 군 복무 부적응을 초래할 수 있다.
주둔지 경계중인 해외 파병부대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선 지휘관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다. 전투 준비와 훈련 외에 병사 관리까지 해야 한다. 지휘관들 중에는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까지 제대군인 재취업 관련 업무를 경험한 관계자는 “심리상담사 자격증은 예전에는 제대하고 나서 땄는데, 요즘은 현역 시절 취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만큼 병사 관리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일정 부분 사회의 병폐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외둥이 가정이 우리 사회의 가족구조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자녀들은 사회성을 익힐 기회가 많지 않다. 아이들에게 사회성을 키워줘야 할 가정과 학교는 입시만 강요할 뿐, 친구 사귀는 법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 경쟁으로 내몬다. 사회성을 키우지 못한 채 ‘덩치 큰 아이’가 돼 버린 젊은이들이 군에 입대하면서 군 지휘관들은 사회성과 환경 적응능력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 역할까지 해야 할 상황이다.

2014년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군 내 가혹행위 원인을 군에서만 찾지 말고 사회적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자성이 제기됐었다. 주모자인 이모 병장처럼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덩치 큰 아이’가 늘어나면 제2, 제3의 윤 일병이 나올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이같은 자성은 오래 가지 못했고, 범사회적 차원에서의 대책 대신 군에 책임을 지우는 기존 방식으로 회귀했다.

병역특례 폐지가 현역 판정률 상승으로 이어지고, 군 복무 부적응 우려로 이어지면서 군 입대 문제가 오랜만에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다. 이참에 군 복무 부적응의 근본 원인을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은 어떨까. 군의 문제이지만 군 차원에서는 100% 해결할 수 없는 복무 부적응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