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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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뜨락] 시인

조인선

권력은 언어에서 나온다는데
언어에도 계급이 있다는데
한마디 말이 천리를 갈 줄 알아
그 말 타고 사람들이 천지를 떠돌지만
돌아와 주절주절 내뱉는 말이 시발이란다
시에도 발이 있다면
저절로 달아나는 말이 될 텐데
거지 같은 내 말은 먹을 게 없다
유곽 같은 집이면 어떤가
오늘 같은 밤이면 겁도 없이
제멋대로 가자는 대로 내버려둔다
계곡을 지나 광야를 지나 바다에 이르러
마침내 해 뜰 때까지
비루먹은 내 말이 퀭한 눈으로
토씨 하나 제자리 찾을 때까지

-신작시집 ‘시’(삼인)에서

◆ 조인선 시인 약력

△1966년 경기 안성 출생 △1993년 첫 시집 ‘사랑살이’ 이후 시집 5권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