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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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아∼ 입 크게 벌리고 한숨 푹 주무세요

‘치과 공포증’ 극복 어떻게
#1. 신모(27·여)씨는 치과가 무섭다. 어린 시절, 억지로 끌려간 치과에 대한 공포가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서다. 이후 신씨는 성인이 되기까지 치아가 아파도 꾹 참고 한 번도 치과를 방문한 적이 없다. 그 사이 신씨 치아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망가지고 말았다. 이 탓에 결혼, 구직 등 사회활동에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2. 일곱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주부 이모(35)씨는 그동안 육아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 편이다. 아들이 떼쓰거나 짜증 내는 일이 드물 정도로 유순하고 말을 잘 듣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아들이 유독 이씨를 힘들 게 할 때가 있다. 바로 정기적인 치과 방문일. 이날만 되면 이씨는 집에서 치과에 들어가기까지 2~3시간 정도를 어르고 달래야 한다. 힘들게 치과에 들어가서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이씨와 간호사 여러 명이 달라붙어 ‘뽀로로’ 영상을 틀어주고 장난감을 쥐여줘도 아들의 발버둥은 그칠 줄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치과 치료는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이로 인해 치과 치료를 미루고 피하다가 심한 질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치과공포증(Dental Phobia)’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상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약 10∼15% 정도가 치과공포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과공포증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는 적은 사람에게 더 많다. 치과공포증에 시달리는 환자는 대부분 초기 치료를 미루다가 급성치수염, 급성농양 등 통증이 심해져야 어쩔 수 없이 치과를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치과공포증의 유발 원인으로는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환자의 부정적인 치과 치료 경험이 대표적이다. 시각·청각 등의 자극과 불안감, 치과의사에 대한 불신 등 다양한 요인이 꼽힌다. 

치과공포증의 상당수는 어린 시절 겪은 치과 치료 경험에서 비롯된다. 전문가들은 어린이 환자의 치과공포증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신마취를 권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치과공포증 환자는 치료에 사용하는 주삿바늘이나 치과용 기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이 생긴다. 치료 과정에서 생기는 소음도 치과를 공포의 장소로 만드는 요인이다. 치과공포증이 심한 환자가 이런 자극을 접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돼 원활한 치과 진료가 어려워진다.

치과 치료에 대한 나쁜 경험을 최초로 접하는 유아기에 치과공포증이 시작되는 사례가 절반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손발이 자유롭지 않아 자신의 의지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도 치과공포증을 심화하는 원인이다.

이에 병원에서는 치과 대기실에 은은한 음악을 틀거나 TV를 켜 놓는다. 치과 기계가 만드는 소음으로부터 환자를 분리해 두려움을 일시적으로 줄여주기 위함이다. 환자 역시 치과나 치아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본인이 받을 치과 치료가 어떤 것인지 예상할 수 있어 공포를 줄이는 데 도움된다. 

일명 ‘덴탈아이큐(Dental I.Q)’라고 불리는 치과에 대한 지식 수준이 높을수록 치과공포증은 감소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에는 ‘전신마취’ 치료가 치과공포증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전신마취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과 편견이 흔하다.

전신마취가 뇌 수술이나 위험한 수술을 할 때나 필요하다거나 전신마취를 한 번 할 때마다 뇌세포가 죽어 머리가 나빠진다는 속설 등이 대표적이다.

전신마취 때 투여하는 마취제는 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마취에서 깨어난 후 어지럽거나 마취 과정이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머리가 나빠져 학업 성취도가 저하된다거나 기억력이 감소되는 것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치료 과정이 기억 나지 않아 치과 치료에 대한 불안이 심한 환자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명훈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는 “과거에는 구강암이나 양악수술과 같이 큰 수술에만 적용하던 전신마취를 요즘은 사랑니 수술이나 임플란트 수술에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어린이 환자의 치과 치료에 대한 트라우마를 줄이기 위해 어린이 치과 치료 시 아예 전신마취 후 다량의 치아를 한 번에 치료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치과공포증의 절반 이상은 어린 시절 겪은 치과 치료에 대한 나쁜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만큼 어린이 환자들의 초기 치과 치료에 대한 세심한 접근이 중요하다. 특히 어린이 환자들은 치과에 대한 공포로 몸의 통증을 호소하거나 심한 몸부림으로 탈진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신터전 서울대치과병원 소아치과 교수는 “전신마취 치료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