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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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검찰청, 탈북자 범죄 분석 및 대책 마련 착수

대검찰청은 최근 예산 2500만원을 들여 ‘북한이탈주민 범죄 유형과 원인 분석 및 대책’이란 제목의 정책과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한국 법제에 대한 이해 부족과 남북한 생활환경 차이 등으로 범죄 유혹 노출되기 쉬워 / 연구용역 맡겨 11월까지 보고서 나오면 탈북자 범죄 예방, 피해 지원책 수립 등에 활용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탈북자)이 갈수록 늘어남에 따라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도 증가하는 가운데 검찰이 탈북자에 의한 범죄 유형과 원인 분석, 대책 마련 등에 전격 착수했다.

대검찰청 형사부(부장 박균택 검사장)는 최근 예산 2500만원을 들여 ‘북한이탈주민 범죄 유형과 원인 분석 및 대책’이란 제목의 정책과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4일 밝혔다. 연구는 오는 11월까지 약 6개월 동안 이뤄질 예정이며, 연구 결과물은 탈북자의 범죄 예방 및 피해 지원 정책 수립에 활용된다. 2015년 기준으로 국내 탈북자는 약 2만8000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중앙지검은 북한에서 생산된 필로폰이 북한·중국 접경지역을 거쳐 국내로 반입된 사건을 수사하며 필로폰 유통·투약에 가담한 탈북자 10여명을 적발했다.

◆“북한에선 필로폰 투약 정도는 범죄 아냐”

실제로 최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진행한 북한산 필로폰 밀반입·유통 사건 수사결과를 보면 입건한 25명 중 탈북자가 16명으로 가장 많다. 탈북자 16명 가운데 7명은 구속기소, 7명은 불구속기소됐다.

검찰 조사에서 탈북자들은 “북한에서도 필로폰을 투약한 경험이 있어 미처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약이 부족한 북한은 몸이 아픈 경우 필로폰을 진통제처럼 투약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심지어 경조사 때 한국의 축의금이나 부조금처럼 필로폰을 교부할 정도로 필로폰 취급이 일상적이라는 것이 탈북자들의 경험담이다.

전직 다방 종업원 강모(33·여)씨의 경우 2015년 2월부터 12월까지 상습적으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그녀는 필로폰을 투약한지 약 1주일 만에 탈북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국내 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부 탈북자 사이에 필로폰 투약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건 수사를 주도한 검찰 관계자는 “필로폰 거래·투약이 큰 죄가 되는지 몰랐다고 진술하는 탈북자들을 보며 향후 마약 범죄의 중독성·위험성에 관한 홍보를 강화해 범죄를 예방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고 털어놨다. 검찰은 수사결과를 통일부 등 관계기관에 보내 업무에 참고하도록 했다.

지난해 수원지검은 2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자동차 트렁크에 감금한 혐의(강간 등)로 탈북자 최모(31)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2015년 5월16일 새벽 평소 알고 지내던 29세 여성 A씨와 술을 마신 뒤 집에 데려다 주겠다면 A씨의 차를 운전해 가던 중 길가에 차량을 세우고 반항하는 A씨를 성폭행한 다음 A씨의 손발을 묶어 자동차 트렁크에 가둔 혐의를 받았다. 최씨는 심지어 성기를 꺼내 A씨 얼굴에 소변을 보는 엽기적 행각까지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지법 재판부는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수법을 사용해 죄질이 무겁다”며 최씨에게 징역 7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120시간 이수, 개인 신상정보 5년간 공개·고지를 선고했다.
탈북자들이 ‘홍익인간’ 정신 등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있다. 검찰은 국내 탈북자들이 범죄 유혹에서 벗어나 건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탈북자가 다른 탈북자 노려 범행 하기도

탈북자가 같은 탈북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은 사례도 더러 발견된다. 이는 상당수 탈북자가 탈북과 국내 입국을 거치는 동안 브로커에게 거액을 지불하는 그릇된 관행과 무관치 않다. 탈북자가 탈북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건네는 비용은 대략 300만∼400만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자 이모(여·35)씨는 지난 2011년 1월 남편과 남편의 지인 2명을 끌어들여 다른 탈북자 임모(30·여)씨와 임씨의 딸을 납치했다. 이씨는 임씨에게 “300만원을 내놓지 않으면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이씨는 임씨가 탈북을 도와준 브로커에게 지급해야 할 사례금 300만원이 미지급 상태임을 알고 그 돈을 자신이 가로채고자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서울남부지검은 이씨를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기소했고, 지난해 10월 서울남부지법 재판부는 이씨의 혐의 내용을 모두 유죄로 판단해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탈북자는 우리나라 법과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 남북한 사이의 생활환경 차이 등으로 인해 범죄 유혹에 노출되기 쉽고 범죄 피해에 대한 적절한 대처도 미흡한 경우가 많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9년 48명이던 탈북자 수감자 수는 2011년 51명에서 2012년 68명, 2013년에는 86명으로 급증했다. 2014년의 경우 7월까지 97명이나 수감됐다. 탈북자들의 범죄 피해 경험률은 23.4%로 우리나라 범죄 발생률 평균인 4.3%의 무려 5배에 이른다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 결과도 있다.

대검은 이번 연구를 통해 탈북자의 현황, 발생 추이, 생활환경 및 법적 지위 등을 정밀하게 분석한다는 방침이다. 대검 관계자는 “탈북자의 범죄 발생 및 피해 현황과 그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기초로 북한이탈주민의 특수성을 감안해 범죄 예방과 피해 지원 등에 필요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