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으로 35년간 봉직하다 2014년 6월 경기도 남양주경찰서 평내파출소 지구대장을 끝으로 제복을 벗은 이명우(60)씨는 ‘봉사하는 삶’ 그 자체다. 경정으로 퇴직한 이씨는 얼마 전부터 한국청소년 육성회 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학교 밖 청소년 선도 캠페인, 불우 청소년을 돕기 위한 캠프 개최 등이 그의 일이다.
1979년 경찰에 투신한 이씨는 봉사와 나눔의 단체인 사단법인 ‘사랑터’를 이끌었다. 이씨가 공무원이라 사단법인의 이사장을 맡을 수 없어 이씨의 은사이며 친구인 성균관대 박승희 교수(60·사회복지학)가 이사장을 맡았다.
사랑터 회원은 200여명에 달하며 대부분 회사원, 자영업자들이다. 이씨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간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그의 봉사정신에 탄복해 자발적으로 가입했다. 봉사하는 데 필요한 경비는 외부의 도움 없이 모두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한다.
봉사단체 사랑터를 이끌고 있는 전직 경찰관 이명우씨가 3일 서울 을지로 3가 사무실에서 “봉사는 측은지심의 시작”이라며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있다. 하상윤 기자 |
“군대 생활 도중 골수암 판정을 받아 6개월이라는 시한부 생명을 선고 받았다. 신앙은 없었지만 병이 나으면 남을 위한 봉사를 하며 살겠다고 신께 맹세했다. 기적인지 오진이었는지 다행히 병이 나았기에 그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1987년 1월 만들어진 사랑터는 약 30년 동안 시대흐름에 따라 봉사활동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보육원, 지적장애아 시설 등을 방문해 봉사했다. 우리 사회의 틀을 한꺼번에 뒤흔든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에는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 길바닥으로 나온 노숙인 등이 많아지면서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 이씨는 서울 강북에 소재한 중고등학교의 결식학생을 위해 날마다 점심 도시락 150여개를 제공했을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말한다. 당시 사랑터의 도시락 도움을 받은 학생이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사랑터 회원으로 사랑을 베풀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경찰관으로서 야근하고 힘들어도 나를 기다리는 눈빛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다. 새벽시장에 가서 계란, 라면, 배추 등 부식과 쌀 등을 구입한 뒤 곧바로 포장 배분할 때 집사람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늘 고맙게 여기고 있다.” 이씨의 부인도 사랑터의 총무로서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이씨는 창신동, 정릉동 일대의 달동네 주민들에게 제공할 생필품 및 부식 등을 메고 뛰느라 관절이 성치 못한 상태다. 요즘 이씨는 매달 셋째주 토요일에는 무의탁 말기암 환자들이 있는 성가복지 병원(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지체장애인들에게 기술을 교육하는 ‘사랑의 집’(서울 중랑구 신내동) 등 10여곳을 찾아 먹거리를 전달하고 있다. 넷째주 일요일에는 국방부 사무관으로 재직 중인 이씨의 장남 지형(33)씨가 봉사에 나선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봉사활동을 지켜본 지형씨는 사랑터 청년단장 출신으로 서울역 건너편의 쪽방촌, 창신동 등지의 조손가정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누구의 강요없이 봉사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씨는 헌혈봉사로도 유명하다. 남몰래 헌혈봉사를 한 공로로 1992년 청룡봉사상을 받은 이씨는 이제까지 헌혈을 200여회나 했다고 한다. 1995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금장 포장을 받은 이씨는 “1년 전까지 헌혈을 했는데, 혈압약과 모발약을 복용하는 탓에 헌혈을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군 복무 중 첫 휴가를 나와 길거리에서 우연치 않게 헌혈 버스에 오른 게 헌혈봉사의 시작이었다.
봉사를 좀더 잘 해보기 위해 방송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이씨는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21년 동안 매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묘비 닦아주기, 잡초제거 등도 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어김없이 국립현충원을 찾았다는 이씨는 “현충원 봉사활동을 위해 사랑터에 청년단을 만들었다. 앞으로는 사랑터 회원 외에 외부 단체와의 합동 봉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에게는 요즘 고민이 생겼다. 자신도 나이를 먹으면서 사랑터를 물려주고 이를 이끌어갈 인물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터는 내년 1월이면 창립 30년을 맞는다. 이씨는 “큰아들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회원이며, 아직 리더로서 부족함이 많다. 이 단체가 앞으로도 30년 더 존속되어야 한다”며 “사욕이 없고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이면 족하다”고 강조했다.
박병헌 선임기자 bonanza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