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면 주말마다 지인들의 결혼 청첩장이 마치 '세금고지서'처럼 날아온다. 친밀도에 따라 축의금 액수를 분류하다가도 '결혼 안하면 축의금도 돌려받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최근 '미혼'이 아닌 '비혼'을 선언하는 싱글족이 부쩍 늘었다. '아닐 미'(未)자를 쓴 미혼은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것뿐이지 언젠가는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아닐 비'(非)자를 쓰는 비혼은 다르다.
◆"결혼 안하면 축의금도 돌려받지 못하겠구나"
이런 추세는 사회관계서비스망(SNS)에서도 뚜렷이 보인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는 2011년 1월 1일부터 올해 4월 20일까지 블로그와 트위터를 분석해 결혼에 대해 알아봤다.
이에 따르면 '비혼'의 언급량은 지난해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1∼2014년 2500∼3000건 안팎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1만3037건으로 약 5배 이상으로 뛰었다. 급기야 비혼의 올해 언급량은 1만9730건으로, 2011년(2453건)에 비하면 올해는 704%나 증가한 것이다.
결혼이나 연애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초식남'과 '싱글족'은 어떨까. 비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언급량도 덩달아 늘었다. 초식남은 2011년 9873건에서 지난해 1만4947건으로 51% 증가했고, 싱글족은 2011년 6659건에서 지난해 1만3322건으로 100% 늘었다.
더이상 결혼은 인생의 필수 통과의례가 아닌 셈이다. 사랑한다고 다 결혼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 관련 감성어를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왜 결혼을 꺼리는지 알 수 있다.
◆'현실'·'경제' > '사랑'
2011년부터 최근까지 '사랑'은 결혼 관련 감성어로 부동의 1위였지만, 언급량 추이를 보면 최근 5년새 등락을 거듭하다가 2013년 13만1031건에서 지난해 11만9072건으로 다시 주저앉았다.
이에 비해 '현실적', '스트레스', '경제적' 등 부정적인 감성어의 언급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의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전셋값에 부담스러운 결혼식 비용은 시작 전부터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본격 결혼생활도 만만치 않다. 며느리·사위 이름으로 해야 할 각종 의무와 도리·육아전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차라리 싱글이 나은 것이다.
SNS에서도 결혼 연관어로 '스트레스'는 지난해 4797건으로 2011년(1577건)보다 3배로 뛰었고, '현실적'은 지난해 6582건으로 집계돼 2011년(2099건)보다 213% 증가했다. '경제적'은 2011년 6693건이었다가 지난해 7690건으로 소폭 상승했다.
다음소프트는 "2012년부터 '합리적'·'실속' 등이 연관어로 등장했고, 결혼 준비에 대한 비용 부담을 읽을 수 있었다"며 "신혼집 등을 포함한 결혼 준비에 큰 비용이 들다 보니 '웨딩푸어'(결혼비용 때문에 빚을 지고 시작하는 부부) 등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라고 분석했다.
◆'웨딩푸어'를 아시나요?
결혼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결혼 관련 감성어 가운데 '합리적'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합리적'의 언급량은 지난해 1만6044건으로 집계돼 11위였다.
'합리적'은 2011년에는 순위권에도 등장하지 않았다가 2012년 4916건(22위)으로 처음 존재감을 보였다. 5년 새 결혼에서 허례허식 보다는 합리적인 소비를 중시하는 풍토로 트렌드가 변한 것으로 분석된다.
결혼식을 올릴 때도 비싼 수입 드레스와 호텔식으로 상징되는 화려함보다 센스 있고 경제적인 '셀프웨딩'이나 '스몰웨딩'(작은 결혼식) 쪽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셀프웨딩' 언급량은 2011년 225건에서 지난해 1만2260건으로 55배 가까이로 늘었다. '스몰웨딩'도 2014년 처음으로 46건이 등장해 지난해 4820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에 비해 인기 신혼여행지로는 비싼 휴양지가 많이 언급됐다. △하와이(6만5467건) △몰디브(4만7249건) △발리(3만7249건) 등 순이었다. 멕시코 동쪽 카리브해에 위치한 칸쿤은 2014년(7369건) 처음 등장해 4위에 올랐다.
결혼식에 감동을 더할 인기 축가로는 2014∼2015년 성시경의 '두 사람'(4733건)과 이적의 '다행이다'(4124건)이 박빙을 이뤘다. 에디킴의 '너 사용법'도 2972회 언급돼 3위에 올랐다.
이처럼 결혼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결혼정보업계에 '남초(男超)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연말 기준) 회원 성비를 분석한 결과 2006년 44.8%였던 남성회원 비중이 지난해 52.1%로 높아졌다. 특히 2010년에는 남성이 회원의 41.0%에 지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불과 5년 만에 남성회원 비율이 11%P가량 급증한 셈이다.
올해 1분기 말 현재 회원 성비를 봐도 남성이 51.4%, 여성이 48.6%로 이런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여성들의 비혼 확산 등 결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가 일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결혼·출산·육아에 따른 경력단절 문제로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비혼을 택하는 여성이 늘면서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짝을 찾으려는 여성의 비율도 낮아졌다는 것이다.
◆결혼, 아직도 女보단 男에게 더 유리한 제도?
이에 비해 남성들은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 결혼을 서두르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김승호 듀오 홍보팀장은 "아직 결혼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유리한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결혼을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영역으로 두려는 현상은 남성보다 여성들 사이에서 더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혼정보회사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이 바뀐 것도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결혼정보회사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다양한 개인정보를 업체에 제공해야 한다.
남성들은 이런 가입 절차를 대부분 번거로워했지만, 최근에는 배우자감의 직업·연봉 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상대가 거짓 정보를 제공할 우려가 있는 ‘소셜데이팅’(온라인으로 상대를 정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것)보다 결혼정보회사를 택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박수경 듀오 대표는 "안정적 직업을 가진 남성은 혼기가 되면 짝을 찾지만, 출산과 경력단절이 두려운 여성은 정작 혼인을 기피하고 있다"며 "이런 불균형이 지속되고 결혼 상대를 찾기 어렵다면 많은 합리적 의사선택을 위해 더 다양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