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정치 전문가인 미첼 메지 교수는 의회의 ‘정책 형성력’과 의회에 대한 ‘국민 신뢰’라는 두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각국 의회 유형을 분류했다. 정책 형성력이란 의회가 어느 정도 행정부의 제안을 수정하고 용이하게 거부할 수 있는가를 의미한다. 국민 신뢰란 의회가 국민으로부터 어느 정도 지지를 받고 있는가를 지칭한다. 미국 의회는 행정부의 제안을 대폭 수정하고 용이하게 거부할 뿐 아니라 그 자체의 대안을 제시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강한 정책 형성력과 국민으로부터 지지가 높은 ‘능동형’ 의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국회는 행정부안에 대해 대안 제시는 아주 예외적이고, 국회선진화법에 힘입어 의미 있는 반대를 하는 정도의 정책 형성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 수준은 상당히 낮은 ‘주변적’ 의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
또한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민감한 정치 현안이 불거지면 국회는 문을 열어 놓고 공전하면서 ‘놀고먹는 국회’가 된다. 우리가 상시 국회라고 알고 있는 미국 연방 의회는 연중 약 170일 정도 일한다. 다만 모든 의사일정이 캘린더식으로 사전에 정해져 있기에 의회가 공전되는 일은 없다. 그래서 미국 의회에서는 개회가 아니라 휴회 공고가 나온다. 20대 국회에서는 캘린더식 요일제 운영 방식을 통해 예측 가능한 일 하는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 의원들이 강제적 당론에 발목이 잡히면 입법 교착 상태는 해소되지 않는다. 이에 20대 국회에서는 의원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200개가 넘는 특권을 내려놓아 ‘특권 제로 국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헌법 사항이라도 국회법을 개정해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의원들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유명무실한 윤리 특위를 의장 직속의 윤리심사 기구로 재편해야 할 것이다. 외부 인사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이 기구가 결정한 징계 사항은 국회 본회의에서 3분의 2 이상의 반대가 없을 경우 무조건 채택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협치 절벽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정부도 국회와의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는 국정운영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협치는 말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단언컨대 국회의원이 모든 행태와 결정의 기준을 내년 대선에 유리한가 아닌가에 맞춰 의정 활동을 할 경우 협치는 사라진다. 20대 국회의원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대한민국 헌법 제46조 2항인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를 지킨다는 각오로 의정 활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협치 국회, 능동 국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