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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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600년 유교 성지, 성균관과 문묘

한양도성 동북쪽의 작은 문인 혜화문으로 가는 길에는 600년간 조선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유학을 공부했던 성균관이 있다. 그 앞에 자리 잡은 건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문묘다. 지금은 성균관대학교가 있어 흔히 성균관이라고 묶어 부르지만 제사시설인 문묘와 교육시설인 성균관은 별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엄연히 분리되어 있다.

문묘, 성균관의 건물 구조는 유교의 중심가치였던 예의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성균관에 들어서면 널찍한 마당에 명륜당이 서 있고, 좌우로 학생들이 머무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재밌는 것은 마루의 위치다. 명륜당은 건물의 앞쪽에 동재, 서재(사진)는 뒤쪽에 두었다. 왜 그럴까. 조선시대에 이곳에서 치러진 의례는 임금이 참석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선현을 기리는 제사인 ‘석전’(釋奠), 성균관에서 열린 과거시험이 그랬다. 따라서 학생들이 머무는 동재와 서재의 마루가 명륜당 쪽을 향하면 임금이 왔을 때 학생들의 침구, 옷가지 등이 임금의 눈에 띌 수 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것을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해 동재와 서재는 마루를 건물 뒤쪽에 둔 것이다.

지방 향교와 비교해도 재밌는 특징이 보인다. 대부분의 향교에는 공부를 하는 명륜당이 앞에 오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이 뒤에 놓인다. 성균관과 문묘는 반대로 대성전이 앞에 있다. 성균관의 역사를 담은 ‘태학지(太學志)’는 “성묘가 앞에 있고 명륜당이 뒤에 있어 공자와 맹자가 앞에 있고 정자와 주자가 뒤에 있는 것 같다”고 이런 배치를 설명한다. 제자가 선생의 뒤를 따르는 모습인 셈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향교는 경사진 구릉지에 놓여 대성전이 뒤에, 정확히 말하면 ‘위’에 있다. 존중하고 숭모하는 마음을 건물의 배치와 모양에도 남긴 것이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 전체는 사적으로, 대성전과 명륜당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