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전시내각을 이끈 윈스턴 처칠은 종전 이듬해인 1946년 스위스 취리히대학 연설에서 전후 재건을 위한 ‘유럽합중국 건설’을 제안하고 첫 단계로 유럽평의회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1949년 첫 유럽기관인 유럽평의회가 구성된 데 이어 1957년 로마 조약 체결로 유럽경제공동체(ECC)가 출범했고, 1992년 단일통화 도입, 공동 외교안보정책 수립 등을 골자로 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돼 EEC는 유럽연합(EU)으로 변신했다. 그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전환점마다 유럽인들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유럽통합에 손을 들어줬다. 그 결과 EU는 국가처럼 행동하며 EU법은 회원국 법에 우선한다. 유럽인들은 ‘세기의 정치 실험’으로 전례 없는 통치체제를 만들어냈고, EU는 유럽인의 정치적 유전자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완규 논설위원 |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결과를 예상치 못할 만큼 찬·반 의견이 엇비슷하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장기간에 걸친 지각변동을 겪게 된다. 당장에는 국제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고 중장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의 틀이 흔들릴 것이다. 다른 회원국들의 EU 이탈 움직임과 EU 규제 저항을 불러와 EU 붕괴를 초래하면서 국제질서 전반에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에선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 분리독립 움직임을 부추겨 세계를 주름잡던 ‘그레이트 브리튼’이 ‘리틀 잉글랜드’로 쪼그라들 수도 있다. 브렉시트가 부결되더라도 큰 파문이 예상된다. 반(反)EU 정서가 강한 EU 회원국들에선 유럽통합 회의론이 득세할 것이다. EU가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탈중심주의를 포용하는 방향의 개혁 논의도 봇물을 이룰 것이다. 그만큼 유럽합중국의 꿈은 더 멀어진다.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은 “테러를 먹고 자라는 국수주의가 서구를 행진하고 있다”고 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브렉시트가 서방 정치문명의 종말을 알리는 시작이 될까 두렵다”고 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서막인 독일의 벨기에 침공을 하루 앞두고 에드워드 그레이 영국 외무장관이 집무실 창가에서 저물어가는 도시를 보며 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유럽 전역에서 등불이 꺼져가는구나. 우리는 그것들이 다시 밝혀지는 것을 일생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는 세상이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광기에 휘말릴 것을 예감했다.
전 세계가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주시한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어둡고 험난한 세상에서 길을 인도하는 등대”라고 치켜세운 ‘유러피언 드림’이 말 그대로 한바탕 꿈으로 끝나고 세상의 어둠이 짙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세계는 공급 과잉, 대량 실업, 보호무역·고립주의 확산 등 1930년대 대공황 때와 유사하다는 말이 나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실시되고, 미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급부상한 배경이다. 대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이제 국제사회는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되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인류는 고립이 아닌, 협력을 통해 많은 것을 이뤄왔다. 오늘날엔 고립이 가능하지도 않다. 영국은 그것을 깨닫기까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박완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