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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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미국은 일본에 면죄부 주지 않았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
사죄로 간주하지 말아야
핵개발 산실 로스앨러모스
일본 만행 응징 교육장 변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원폭 피해지역에 가해국의 현직 대통령 방문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주목을 끌었다. 일본에 투하된 원자탄을 만든 미국 현지에서는 어린이들과 부모들이 군국주의 일본을 응징한 이유를 설명하는 ‘맨해튼 프로젝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다.

미국은 오바마의 그라운드제로 방문을 과거를 지워버리고 미·일 간 관계개선의 전환점으로 간주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았다. 백악관이 오바마의 방문이 일본에서 사과로 해석될까봐 조바심을 낸 것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 원자탄을 만들었던 로스앨러모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한용걸 논설위원
원자탄은 산간벽지인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개발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나치독일이 원폭 개발에 근접했다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편지를 받은 뒤 이 지역에 핵과학자들을 소집해 원자탄 개발을 지시했다. 미시령보다 더 아찔한 고갯길을 넘어야 접근이 가능한 오지이다. 1930년대 말 강제 소개된 농부들이 비운 자리에 핵과학자들과 가족들이 이사했다.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됐다. 폭발에 대비한 민방위훈련이 수시로 이뤄졌다. 핵분열과 각종 폭발을 실험하는 연구동에서는 굉음이 터져나오기 일쑤였다. 루스벨트 후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공중폭파 실험에서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은 뒤 핵폭탄의 일본 투하를 지시했다.

전후에 시가지 모습이 바뀌었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 됐다. 로스앨러모스의 브랫베리 과학박물관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탄(리틀보이)과 나가사키에 떨어진 플루토늄탄(팻맨)의 실물크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원폭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전시상황과 당위성이 논리적으로 정리됐다. 아인슈타인이 대통령에게 핵개발을 촉구한 편지도 공개했다.

놀라운 것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문짝만 한 헤드라인이다. ‘왜 원자탄인가? 민간인과 군인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 밑에는 좀 더 작은 글씨로 설명이 이어졌다. ‘과거 전투를 보건데, 일본 본토에서 공격과 방어전이 벌어질 경우 양측이 심각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됐다.’ 피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원자탄 투하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만행을 담은 글과 사진이 줄줄이 이어진다. 일본군이 장검으로 포로들을 찌르는 사진이 걸려 있다. 또 일본의 공격을 받고 침몰된 미 전함 모습도 보인다. 전시물들은 원폭투하 결정에 수긍이 가도록 관람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장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시의 다른 곳에는 원폭 개발을 주도했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장의 저택이 보존돼 있다. 연구원들과 가족들이 연회를 했던 대형건물도 그대로다. 일부 실험실과 집터는 복원 중이다. 미 정부는 2015년 국방수권법안(NDAA)을 통과시키면서 맨해튼 프로젝트 역사공원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로스앨러모스 보전에 진력하고 있다. 후손들이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곳 방문객은 연간 6만여명. 사막과 꼬불꼬불한 먼 길을 달려서 겨우 접근이 가능한 벽지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이다. 미국 정부는 이 오지를 일본군 응징의 정당성을 알리는 산교육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한국에는 달갑지 않았다. 6·25전쟁에서 함께 피를 흘린 국가의 수반이 히로시마 원폭희생탑에 헌화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일본 극우세력들이 면죄부를 받은 듯 설치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재무장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이용할까봐 우려도 된다. 그러나 미국은 전혀 다른 시각이었다. 오바마는 헌화 뒤 말했다. “핵 없는 세상을 만들자.” 원자탄을 터뜨려야 하는 상황을 다시는 초래하지 말자는 게 숨은 뜻이다.

기자가 브랫베리 과학박물관 큐레이터에게 오바마의 히로시마 헌화 사진을 게시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일본의 과거 죄를 환기시키는 교육장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의 헤드라인은 한국은 목소리만 요란한 게 아닌가 하는 점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