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원내대표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총선 참패 후 사실상 당을 대표하는 그는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무소속 의원들의 복당 등 현안을 처리하다 친박·비박 갈등에 ‘낀박’ 신세가 됐다. 연설 준비보다는 당 수습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을 거다. 문제는 총선이 끝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보수 혁신에 관한 논쟁은 없고 계파 갈등만 요란하다는 데 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가치 논쟁, 미래에 대한 담론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를 친박·비박계의 권력 정치가 채우고 있다.
황정미 논설위원 |
정치가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라면, 여당은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 기존 질서를 지키는 보수정당으로서 ‘왜 새누리당이 되어야 하는지’ ‘새로운 보수의 꿈은 무엇인지’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 걸 고민하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여당 중진 의원의 말이다. 유승민 의원이 19대 원내대표 연설에서 밝힌 ‘따듯하고 정의로운 보수’는 가치 논쟁이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배신 논란으로 끝났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영국 보수당 200년 역사를 다룬 책 ‘보수 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에서 시대적 변화에 유연한 대응을 보수당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그게 가능했던 건 보수의 미래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두뇌집단 덕분이다. 보수당의 싱크탱크 정책연구센터는 대처리즘의 산파였다. 2005년 39세에 보수당 당수에 오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현대적인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세웠다. 우파 싱크탱크 ‘정책교환’의 작품이다. 미국에서도 대표적 보수 싱크탱크 ‘미기업연구소’가 없었다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보수 혁명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보수 정당의 맥을 잇는 새누리당에는 여의도연구원이 있다. ‘글로벌 싱크탱크와 대화’를 쓴 박진 전 새누리당 의원은 “당이 현실 정치 위주로 돌아가니까 시대적 어젠다, 당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연구원의 역할은 묻혔다”고 했다. 여의도연구원은 정치 동향을 조사하는 안테나 기능에 그친다. 박 전 의원은 이명박정부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재벌총수의 사랑방이 아니라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싱크탱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최근 어버이연합 재정지원 의혹으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전경련은 3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쏟아진 대기업 때리기에 변변히 대응도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다. 양극화 시대에 선제 대응할 보수 담론을 만들어낼 싱크탱크 하나 없다는 건 보수의 위기다. 보수의 양대 세력인 새누리당, 전경련의 책임이 크다.
황정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