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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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한우값, 떨어져도 올라도 "징징"

입력 : 2016-07-01 05:00:00
수정 : 2016-06-30 15: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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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지난 2012~2013년 한우 가격 폭락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농가들이 사육 숫자를 크게 줄였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이미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한우 가격 급등을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수요와 공급 조절을 통한 쇠고기 가격 안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즐겨 먹는 소고기 부위가 다른데다 선호하는 월령대가 다르기 때문인데요. 더욱이 중간업체들이 한우 유통에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수급조절 역시 사실상 한우농가가 아닌 이들이 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인데요. 이에 일각에서는 한우의 물량을 조절할 수 있는 농가 중심의 단체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우 값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국산 쇠고기를 맛보는 게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보통 4인 가족이 외식을 하면 인당 5만원을 훌쩍 넘는 건 예삿일이다. 이는 산지 소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탓이지만, 복잡한 유통구조도 고기 값을 부풀리는 원인 중 하나다.

실제로 한 지역 음식점에서 맛 좋기로 소문난 한우 음식점의 꽃등심 가격은 1인분(150g)에 3만원이다. '특수 부위'라 불리는 안창살·치맛살·토시살·살치살 등은 같은 양에 4만원을 넘나든다. 아무리 1+ 등급 이상의 고급육만 취급하는 전문점이라고 하지만 가격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내는 '귀족 음식'이 된 지 오래다.

◆한우, 서민들이 쉽게 엄두도 못내는 '귀족 음식'

이는 지난해부터 산지 소 값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한우 한마리가 소형 승용차 가격대인 1000만원을 호가하지만, 상승세는 좀처럼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우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이유는 공급이 부족해서다. 한미 FTA에 앞서 한우 가격 폭락을 우려한 농민들이 사육 두수를 줄인데다, 2013년부터 정부까지 나서 축산농가 폐업을 지원했다. 올해 1분기 전국에서 사육되는 한·육우는 259만6000마리다. 정부에서 보는 적정 사육 두수 280만마리에서 20만4000마리(7.3%)가 모자란다.

한우가 시장에 공급되기까지는 임신 기간을 합쳐 최소 3년 이상 소요된다며 10개월 만에 나오는 돼지와 달리 공급의 탄력성이 떨어져 수급조절이 쉽지 않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즉, 사육기간이 길어서 초과 수요·공급이 있더라도 쉽게 마릿수 조절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돼지와 달리 초과 수요·공급 있어도 마릿수 조절 어려워

한우가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유통과정은 크게 5단계로 나뉜다. ‘축산농가→도축장→중도매인→가공업체→정육점’을 거치는 구조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지난해 상반기 축산물 유통실태를 조사해 내놓은 쇠고기 유통 비용율은 41.5%다.

소비자가 낸 쇠고기 값 1만원 중 4150원은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덤’으로 얹혀진 비용이라는 뜻이다.

음식점의 경우 여기에다가 영업장 임대료와 인건비 등이 더해져 원가보다 2∼3배 높은 값이 책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쇠고기 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축산농가로 돌아오는 몫이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유통업계에서는 한우 값이 너무 오르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 쇠고기에 시장을 내줘 결국 축산농가에 피해가 되돌아간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나치게 높은 한우 값이 오히려 축산농가를 위기에 몰아넣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

◆한우 대신 수입 쇠고기 사먹는다

이런 점에서 유통단계를 줄여 가격 거품을 걷어낸 한우 직거래 매장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축협이나 생산자단체 등이 직접 한우를 도축해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운영하는 매장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이 같은 형태의 매장이 급증하는 추세다.

정부와 농협도 축산물 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판매장 설치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한우의 생산·도축·가공·판매로 이어지는 과정이 단순해질수록 소비자 가격은 낮아진다며 한우프라자 형태의 직거래 판매장에 시설·자재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농식품부 측은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한미 FTA로 쇠고기 시장이 개방된 이후 한우농가가 매일 45호씩 사라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일 농협 축산경제리서치센터의 'FTA 시대 한우산업의 구조변화와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우 사육호수는 한미 FTA가 체결된 2012년 15만4000호에서 올해 8만8000호로, 42%(6만6000호) 급감했다.

◆한미 FTA 쇠고기시장 개방, 한우농가 하루에 45호씩 사라져

4년간 한해 평균 1만6500호씩 사라진 것인데, 하루에 45호씩 문을 닫은 셈이다. 농가들이 줄도산하면서 한우 사육 마릿수도 2012년 이후 매년 15%씩 줄었다. FTA 이전(전년 대비 평균 5.4%)과 비교하면 감소 폭이 훨씬 크다.

보고서는 최근의 한우 가격 상승은 FTA 이후 농가들이 잇따라 폐업하면서 공급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지적한다. 2008년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논란이 일면서 한우 수요가 급증했고, 한우 농가는 같은 해 18만3000호로 늘었다.

이처럼 공급량이 늘다보니 자연스레 한우 가격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문닫는 농가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미 FTA의 발효 시점인 2012년을 기점으로 가격 폭락을 우려한 농가들이 사육 마릿수를 대폭 줄이고, 정부까지 나서서 암소 감축 사업을 시행하면서 다시 공급량이 빠른 속도로 감소한 것이다.

여기에 살아남은 농가들이 수입 쇠고기와의 차별화를 위해 한우 품질의 고급화 전략을 펼친 것 역시 가격 인상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다.

◆’대중적인 고기’로 한우 입지 좁아져

대게 한우는 품질에 따라 5단계(1++·1+·1·2·3)로 나뉘는데, 1등급 이상 출현율이 2012년 58.1%에서 올해 4월 기준 66.6%까지 늘어난 반면 최하위인 3등급은 14.1%에서 8.2%로 하락했다.

한우가 공급은 줄고 가격이 올랐다는 것은 바꿔 말해 '대중적인 고기'로서 한우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한우농가들이 생산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송아지 번식 농가를 지원해주는 등 공급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농협 축산경제리서치센터는 제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