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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국내 언론사와 재난 관련 기관은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강원도 횡성군 북동쪽 1.2㎞ 지역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했다. 발생지역 인근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고 건물 붕괴 등이 우려되니 대피하기 바란다”고 적힌 한 통의 팩스 때문이다.
요즘은 측정장소마다 다를 수 있는 진도 대신 지진 자체의 에너지를 따지는 ‘규모’로 지진 등급을 나누는데 규모 5 정도면 전봇대가 파손되는 정도이고 규모 6은 땅이 뚜렷하게 흔들리고 주택 등이 무너지는 정도다. 규모 7이면 땅이 심하게 흔들리고 아파트 등 큰 빌딩이 무너지는 대지진으로 봐야 한다. 소동은 20분 만에 재난대응에 대비한 훈련용 팩스가 잘못 전송된 것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한반도의 지진 피해 발생 가능성은 논란이 엇갈린다. 지질 구조상 일본과 달리 대지진 등으로 인한 지진 피해 가능성은 작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4월 일본 강진으로 한반도 지진 공포가 커지자 당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헌철 지진연구센터장은 공식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규모 6.5 이상 지진이 날 수 없다. 국민 입장에서는 축복이지만 지진학자 입장에선 할 일이 없을 정도”라고 단언했을 정도다. 지진 발생에 필요한 단층이 짧아 큰 지진이 날 환경이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진을 기록하는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는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지진대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도 소규모 지진은 꾸준히 발생한다.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78년부터 2015년까지 발생한 지진 횟수는 총 1212회. 이 중 규모 5 이상 지진은 6차례 발생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78년 10월 발생한 규모 5의 ‘홍성 지진’이다. 북한에선 1980년 1월 규모 5.3의 강진이 평북 서부 의주·삭주·귀성 지역을 뒤흔들었다. 이보다 작은 지진은 다수인데 가깝게는 지난 25일 새벽에도 황해북도 송림 동쪽 20㎞ 지역에서 규모 2.6의 자연지진이 발생했다.
연도별 발생 횟수는 들쑥날쑥하다. 실내에서 느낄 수 있는 규모 3 이상 지진이 2000∼2016년까지 총 152회, 연평균 8.94회 발생했다. 올해도 이미 6월 말까지 8회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규모 2∼3 사이 지진이 두배 가까이 늘어나 다소 국내 지진 피해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이에 대해 기상청 관계자는 “올 들어 우리나라에서 피해가 없는 작은 규모의 지진이 예년과 달리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한반도가 경미한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단층대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 지진학계 일부에선 강진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일본에서 발생한 구마모토 강진의 경우 한반도와 같은 판에 놓여 있기 때문에 수년 내 한반도에도 같은 규모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홍태경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지진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지각에 힘이 쌓이는 시간이 필요한데 주변에서 큰 지진이 발생하면 추가적인 힘이 가해질 수 있다. 지진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의미”라며 “한반도의 지진 수가 적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큰 지진이 나면 규모가 작은 여진이 5∼6년에서 7∼8년까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지진 개수가 더 늘어나게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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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11일 일본을 뒤흔든 동일본 대지진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대량으로 유출돼 원전 인근에 살던 17만명 중 16만명이 대피했다. 이 중 약 12만명은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원전 사고로 유령도시로 전락한 후쿠시마의 출입금지구역 모습. 자료사진 |
통계상 국내에선 규모 5 지진이 10년에 한번 꼴로 나타난다지만 이 역시 지진 자료가 축적된 시간이 30년에 불과하고 규모 5∼7 지진이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빈도는 약 400년 주기라는 견해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일본 수준으로 내진 설계·건축을 보편화하는 등 지진방재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그동안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최근 부처 합동으로 지진방재 개선대책을 내놨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부터는 내진설계 의무 대상 건축물이 3층 이상에서 2층 이상으로 강화된다. 또 공공 시설물은 현행 내진보강 2단계(2016∼20년) 계획에 따라 현재 40.9%인 내진율을 2020년까지 49.4%로 올리게 된다. 지진경보 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으로는 일본 등 국외에서 발생한 지진이라도 일정 수준 이상 진동이 감지되는 지역 주민에게는 지진 상황과 행동요령 등을 안내하는 긴급재난문자를 제공하기로 했다.이 같은 개선대책에 필요한 법률 개정안은 20대 국회 첫 작업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조선시대 진도 7 큰 지진 다섯차례 있었다
지진과 떼놓을 수 없는 게 지진 크기의 척도로 쓰이는 ‘진도(intensity)’와 ‘규모(Magnitude)’다.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진도는 ‘특정 지점’에서 지진 체감 세기나 피해 정도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따라서 동일 지진이라도 위치에 따라 진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 지진학자 리히터가 도입한 개념인 규모는 지진 자체가 만들어내는 진동 에너지 양을 나타내는 척도다. 계측 관측에 의하여 계산된 객관적 지수이며 지진계에 기록된 지진파의 진폭과 발생지점까지의 진앙거리를 이용하여 계산한다. 따라서 진도와 달리 관측 위치에 관계없이 일정하다. 규모가 한 등급 올라가면 지진에너지는 약 32배로 증가한다.
한반도 역시 지진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현대 기준으로 진도 7 이상의 강진이 수차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진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로대된 고문헌은 삼국사기다. 총 107건의 지진이 기록됐다. 대표적 지진으로는 779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100여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고려사·고려사절요 등에는 149건의 지진 발생이 기록됐다.
보다 체계적 관측이 이뤄진 조선시대에는 1392년부터 1863년까지 472년간 기록된 지진이 1967회에 달한다. 1518년 7월 서울 지진은 당시 진도가 7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진도 7정도의 지진은 1597년, 1643년, 1681년, 1810년에도 나타난다. 이후 우리나라는 1905년 첫 계기에 의한 지진 측정이 이뤄졌으며 이후 규모 5.0 이상 강진은 1936년 쌍계사 지진, 1978년 충남 홍성 지진, 1978년 평북 의주 지진, 2003년 백령도 지진, 2004년 경북 울진 지진 등이 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