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공무원 공화국’이다. 청년층 취업준비생의 절반 이상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인 현실이 말해준다. 공시 열풍은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법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에 끌려서다. 공무원 수는 해마다 늘어 2014년 처음으로 공무원 100만명 시대를 열었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40만명까지 포함하면 140만명이다. 안 그래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공무원은 복지서비스 확대 등의 추세에 따라 급증세다. 공무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지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공무원을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렵다. 5년간 전체 공무원의 20% 수준인 10만명을 줄이는 영국의 ‘정부 구조조정’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공무원 연금을 손질하는 데도 그 난리굿을 벌였는데 하물며 있는 공무원을 줄이자고 했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김기홍 논설위원 |
사회가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시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작업 경쟁력을 높이는 4차 산업혁명이 예고된 마당이다. 갈수록 공공의 역할은 줄고 민간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관료사회는 여전히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고 있다. 미래로 나아가는 길목 곳곳을 지키고 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발전의 견인차가 아니라 걸림돌이 됐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능력과 권한의 불균형이 국가 또는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정부의 능력을 의심하게 됐을 때 대통령과 청와대, 여당의 책임으로 돌리곤 하지만 정확히는 관료들의 무능을 탓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확인된 적폐,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무기력,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서 나타난 무책임, 미세먼지 대책 마련 과정에서 드러난 무지는 집권세력의 무능보다 공무원들의 총체적 무능을 말해준다. 그런데도 사건 사고 때마다 과거 정권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집권세력 뒤에 숨어 관료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기획재정부가 한두 번도 아니고 번번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높게 잡았다가 다시 고치기를 반복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나라 살림과 기업·가계 운용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데도 책임을 지는 것은 고사하고 승승장구한다. 누가 봐도 저성장이 예상되는데도 부풀려 잡아놓곤 뒤늦게 ‘불확실성’ 운운하며 핑계를 대는 것은 능력 이전에 공직 기강의 문제다. 이런 식으로 임기 5년짜리 정권을 찜 쪄 먹듯 어르고 달래고 수그리며 5년을 지내면 정권은 가고 공무원은 남는다.
공직사회가 집권세력의 부침을 수십년째 온몸으로 겪어낸 노하우로 끌어안은 것은 철밥통이고 쌓은 것은 철옹성이다. 공직의 전문성과 개방성을 확대하는 것이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지만 공직사회의 저항을 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과제다. 공직사회를 확 바꿔놓으라는 특명을 받고 칼을 휘두른 이근면도 단칼에 찍혀 나갔다. 그가 추진했던 성과연봉제 확대, 민간출신 공무원 채용 확대 등의 개혁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공직사회의 철밥통과 철옹성을 깨지 않으면 우리는 ‘공무원 공화국’ 시대를 지나 ‘공무원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
김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