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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따르면 백혈병, 뇌종양, 골육종 등 1년에 1500명가량의 소아암 환자가 발생한다.
2014년 기준 소아암 진료 인원은 1만3775명으로 전체 암 환자의 1%가 어린이·청소년으로 추산된다.
소아암 완치율(5년 생존율)은 성인암(70%)보다 높은 80% 수준으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치료 과정을 잘 극복하고 ‘소아암 생존자’가 된다. 그러나 한창 몸과 마음이 자랄 시기에 투병 생활을 한 소아암 생존자들은 암 치료 및 회복 과정에서 성인암 생존자보다 큰 심리적 충격을 받는 경우가 많다. 우울·불안 증상을 보이거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예준(22)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뼈에 생기는 암인 골육종 진단을 받았다. 이후 몸 상태가 호전됐다 재발하고 폐로 전이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춘기 시절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지금껏 수술만 5번, 항암 치료는 13번이나 받았다.
이씨는 “치료받을 당시에는 암이 뭔지도 몰랐다. 그냥 너무 아파서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란 생각만 했다”며 “상태가 좋아지면 부모님은 좋아했지만 나는 ‘어차피 나아봤자 또 재발될 텐데’라고 생각했다. 삶에 의욕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몸 상태는 회복됐지만 문제는 마음에 새겨진 상처였다. 치료 때문에 학교를 자퇴했던 이씨는 치료가 끝난 뒤에도 돌아갈 곳이 없었다. ‘내일’에 대한 꿈이 없던 그는 몇 년간 집에서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 그 사이 마음속 병은 점점 더 커졌다. 지난해 부모님 손에 이끌려 상담센터를 찾은 그는 뒤늦게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현재 약물과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는 “그동안 몸 속 암만 생각하고 마음 속 응어리는 방치했었다”며 “더 어릴 때부터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씨처럼 많은 소아암 생존자들은 치료과정에서 혹은 치료가 끝난 뒤에도 극심한 사춘기를 겪는다. 성인암 환자는 스스로 암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있고, 치료가 고통스럽더라도 ‘내 몸을 위한 치료’란 것을 인지하지만 소아암 환자들은 자신이 왜 이런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이 과정에서 좌절감·무기력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마음이 트라우마로 남아 오랜 상흔이 된다.
미국 다나파버 암연구소에 따르면 성인이 된 소아암 생존자 266명(평균 28세)을 조사한 결과 13%(29명)가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 암 치료가 끝나고 수년, 수십년 뒤에도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소아암 생존자들은 신체 치료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된 심리 상담을 받지 못하고 있다.
소아암 생존자들의 투병 기간은 평균 44개월이다. 3년 넘게 치료를 받다 보니 80%가량은 학교를 쉬게 된다. 이들은 치료 뒤 학교로 돌아가지만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쉬다가 6학년 때 복학했다는 박태형(27)씨는 “‘전염되는 것 아니냐’며 나와 어울리지 말라고 하는 친구 부모님들도 있었다”며 “오랜만에 보다 보니 친했던 친구들도 어색해해서 한동안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김지현(27·여)씨는 “체력이 약해서 반 청소에서 빠지거나 자주 조퇴하는 것을 보고 ‘왜 쟤는 봐주냐’면서 시기하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학교의 과보호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건강이 회복됐는데도 아팠었다는 이유로 학교 측에서 수학여행이나 소풍, 체육시간에 불참할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이때 소아암 생존자의 자신감을 꺾고 다른 아이들로부터 배제시켜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이에 대해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은 “소아암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무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단이 소아암 생존자의 반 친구들에게 소아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소아암은 전염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56%에서 87%로, ‘소아암은 완치가 가능하다’는 응답은 65%에서 93%로 높아지는 등 인식 변화에 교육이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교육·상담 프로그램이 좀더 체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립암센터 정신건강클리닉 김은영 박사는 “소아암 생존자들은 암 진단·치료 시기가 신체·정서·인지 발달기간인 데다 교육 기회나 또래집단과의 사회적 교류가 적어 정체성 형성 등 주요 사회심리적 발달이 지연되거나 불가능해질 수 있다”며 “환자와 부모에 대한 정신치료적 접근, 장기적인 추적 관찰 등 심리사회적 개입방법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별기획취재팀:윤지로·김유나·이창수 기자
※실명 사용을 허락한 양근호·서창범씨를 제외한 나머지 환자·학부모의 이름은 가명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