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참석자들의 의문은 “그런데 왜 흙수저로 세상이 시끄럽나?” 하는 쪽으로 모아졌다. 몇 차례 질의응답이 오간 뒤 나는 질문 대신에 개인 소견을 이야기했다. 먼저 통계가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고 수치에 가려진 이면을 봐야 한다고 운을 뗐다. “발표자가 말씀하신 청년 취업난 외에도 혈연·지연·학연과 아파트 문화 영향으로 타인과 비교하는 경향이 심화한 것도 요인일 테죠.”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
물론 지도층 인사들이 공부 모임을 만들어 다양한 사회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골프나 등산 다니는 것보다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 그래도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젊은 시절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지식 충전만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길인가? 자신의 머릿속을 거대담론으로 채우는 것이 공동체에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 일전에 점심식사 자리에서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분의 근황을 들은 적이 있다. 대선 때 정치권에서 입당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뿌리치고 집에서 책을 보면서 소일한다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여의도로 달려가는 현실에서 정치권에 기웃거리지 않은 것만 해도 칭찬 받을 일이긴 하다. 하지만 사회지도층 인사라면 지식을 충전하는 인풋(input)보다 타인에게 나눠 주는 아웃풋(output)을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이 평생 동안 터득한 경험과 지식은 웬만한 도서관보다 많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 정보는 도서관의 장서처럼 후대에 길이 전해지기 어렵다. 죽음이 문을 두드리는 순간, 소중한 정보들은 모두 땅속에 묻히고 만다. 국가적 손실이자 인류의 손실이다. 정보의 사장을 막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자기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타인에게 나눠 주는 일이다. 강좌나 멘토 활동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전해주면 된다. 기성세대일수록, 가진 자나 배운 자일수록 먼저 나서야 한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았다면 닫힌 회의실에서 머리를 충전하는 일이 능사가 아니다. 지식 충전은 줄이고 문 밖으로 나와야 한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꿈과 희망을 전한다면 신구세대 간의 갈등은 크게 줄 것이다.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저주의 언어가 어떻게 나돌아다니겠는가. 청년들이 흙수저 타령을 하는 것은 그들이 나약해서 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이 오히려 더 크다.
꿈은 기성세대가 먼저 꾸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꿈을 청년들에게 나눠 줄 수가 있다. 젊은 시절에 자신을 위해 꿈을 꿨다면 황혼기에는 타인을 위해 꿈을 꿔야 한다.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삶의 태도이자 도덕적 책무이다.
내가 가진 꿈도 기부가 가능하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꿈과 성취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나눠 줄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평생 쌓은 인생 경험과 지식이 그냥 땅속에 폐기된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배연국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