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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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폭력적인 음주문화…대한민국, 이제 숙취에서 깨어나라

한국의 관대한 음주문화로 인해 '고위험 음주 경험자' 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번 마셨다 하면 그 자리에서 소주를 1병 이상 들이키는 고위험 음주 경험자가 10명 중 8명에 달하는데요. 음주 경험자 절반 가량은 2가지 이상의 술을 섞은 폭탄주를 마셨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을 마시는 나이도 점차 낮아지고 있는데요. 청년층일수록 술과 카페인이 많이 함유된 에너지음료를 섞어 마시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음주에 관대한 편입니다. 회식 때 술주정을 부려도 '술에 취해서 그런 거지'라는 변명이 통하는 분위기인데요. 우리도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잘못된 음주문화를 바로 잡는 사회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지난 2월 한 외신은 '한국인의 숙취'란 제목으로 한국의 음주 문화를 심층 진단했다. 이 보도는 폭탄주 회식, '후래자 삼배(늦게 오는 사람이 3잔 단번에 마시기)' 등 모습을 전하며 "한국의 음주 문화는 한마디로 '매우 폭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잔 돌리기와 폭탄주로 대표되는 한국의 유별난 음주 문화는 오래 전부터 세계적으로 악명 높았다. 한국인의 음주 문화가 세계 무대에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건 1920년 발간된 '세계알코올 대사전'을 통해서다. 이 사전은 여러 쪽을 할애해 한국의 역사·문화·지리와 함께 음주 행위를 소개하면서 "한국인은 술 마시기를 매우 좋아하고, 타인의 음주 행위에 매우 관대하다"고 평가했다.

◆서양인들 "韓 음주 문화 매우 폭력적"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음주와 폭음 실태도 자세히 묘사했다. 물론 내키진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국 음주 문화의 현실이다. 각종 범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알코올이 지목되면서 왜곡된 음주 문화를 개선하자는 인식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강압적이고 폭음을 즐기는 술 문화의 폐해는 단순히 숙취에서 그치지 않는다. 알코올은 이성과 의식을 담당하는 대뇌 피질에 영향을 미쳐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이성에 눌려 있던 본능적 충동과 공격적 성향도 배가된다. 각종 범죄나 사건·사고에서 술이 단골로 등장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지역사회를 공포에 떨게 하는 '주폭(酒暴)'이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주폭은 만취 상태에서 상습적으로 폭행이나 협박 등을 일삼는 사회적 위해범을 말한다. 관공서에서 행패를 부리는 단순 공무집행 방해 사범과 달리 상습 주취 행패자를 뜻하는 용어로, 2011년 충북경찰청이 선량한 서민을 보호하겠다는 뜻에서 만들었다.

검찰과 경찰은 주폭이 미치는 악영향과 사회적 인내력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보고 강력 대응에 나섰다.

◆지역사회 공포에 떨게 하는 '주폭'을 아시나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은 알코올 소비량이 감소하는 OECD 회원국의 최근 추세와 달리 소비량이 줄지 않는 나라 중 하나다. 게다가 최고 수준의 알코올 소비국이자 증류주 위주의 독한 술을 소비하는 국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릇된 술 문화로 인한 사회적 폐해와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크다.

다행히도 사회에 깊이 뿌리 박힌 잘못된 음주 문화가 최근 들어 조금씩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 충북 청주의 도심공원 등에서는 올해부터 술을 마실 수 없게 됐다. 지난해 제정된 '건전한 음주문화 환경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 때문이다. 이 조례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을 음주 청정지역으로 지정해 음주 행위를 금지했다.

부산시도 높은 음주율 때문에 얻은 '술고래'란 불명예를 벗기 위해 지난 2월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 추진 계획을 시행했다. 시는 부산진구 등 4개 기초단체에서 지정, 운영해 온 46개 음주청정지역을 16개 전체 구·군으로 확대 운영키로 했다. 또 100인 이상 근로자 상시고용 사업장을 대상으로 건전 음주 다짐 서약서를 작성토록 했다.

술 냄새와 숙취에 찌든 문화를 바꿔 보자는 분위기는 공직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충주경찰서는 올해를 '경찰관 음주운전 제로화 원년'으로 선포하고 '112운동'에 나섰다. '112'는 한가지 술로, 1차에서, 2시간 안에 술자리를 깔끔하게 끝내자는 뜻이다. 문제가 될 만큼 술을 마실 기회를 원천봉쇄하자는 취지다.

◆"한가지 술로, 1차에서, 2시간 안에 깔끔하게 끝내자"

과도한 음주를 경계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주류업계 마케팅에도 영향을 주었다. 경쟁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순한 술 생산에 나선 것이다. 한 업체가 ‘소주계의 허니버터칩’으로 불리며 10여 년 만에 과일 소주 열풍에 불을 붙이자, 다른 업체들도 과일맛 저도 소주를 잇따라 출시했다.

비교적 낮은 도수에 속하는 와인에도 저도주가 대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수출입 통계를 보면 지난해 스파클링 와인(발포성 포도주) 수입액은 2884만2000달러로 2014년(2477만3000달러)보다 16.4% 증가했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수입액이 모두 감소했지만, 스파클링 와인이 성장을 이끌어 전체 와인 수입액은 1억8212만달러에서 1억8977만달러로 4.2% 늘었다.

김준구 금양인터내셔날 홍보팀장은 "친구들과 가벼운 술자리를 선호하는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스파클링 와인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며, 다가오는 바캉스 시즌 스파클링 와인의 판매량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자와 업계의 이런 순한 술 선호 분위기가 고질적인 음주 문화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순한 술도 과하면 그릇된 음주 행태가 고스란히 나타날 수 있기 때문.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 제정을 시작으로 정부 차원의 음주 규제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지만, 여러 한계를 드러내면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술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인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잘못된 음주문화는 바뀔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 사회에서 음주는 문화적, 규범적 의미와 노동·여가의 가교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음주 행위는 곧 사회 활동으로 간주된다. 개인 주량이나 자유 의지와 상관 없이 술 마시기를 강요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가족주의적 사회구조를 지닌 탓에 개개인의 신체조건이나 신념 등을 이유로 술잔을 거부하는 건 먼 나라 얘기다.

◆가족주의적 사회구조…술잔 거부하는 건 먼나라 얘기

술에 관한 실수에 관대한 것도 결국은 강권하는 술자리 문화에서 비롯된다. 술로 인한 폐해도 개인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 차원으로 확대돼 다양한 사회적 병폐로 이어진다. 음주에 따른 한국의 사회·경제적 손실은 연간 20조원이 훨씬 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조직과 사회가 집단으로 술에 취한 문화는 사회 병리 현상이라는 비판과 함께 그릇된 음주 관행을 바로잡아 각자 개성을 존중하는 자율적이고 세련된 술 문화 조성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디아지오코리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윗사람이 주는 술잔을 거부하는 건 한국에선 아직까진 쉽지않은 문화"라며 "자사는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을 위해 2004년부터 '쿨드링커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대학생들에게 '술잔은 천천히, 술자리는 짧게'라는 건전음주 메시지와 올바른 음주습관을 널리 알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