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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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돌고 돌아서 지나간 사랑 노래

이정하 신작 시집 ‘다시 사랑이 온다’
밀리언셀러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의 시인 이정하(54·사진)가 12년 만에 신작시집 ‘다시 사랑이 온다’(문이당)를 펴냈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의 뜨거움과 이별 뒤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절절하게 노래해 유행가처럼 느껍게 스며드는 사랑시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시인이다. 그가 먼 길을 돌아 들고 온 시집은 지나간 사랑을 돌이키며 새로운 사랑을 애타게 바라는 정조로 가득 차 있다.

“삶이 말이야/ 단추 같은 것이라면 좋겠어// 어쩌다 잘못 채워져 있을 때/ 다시 끌러 새로 채우면 되는// 다시 채울 수 없다고/ 억지로 잡아떼지 마// 단추가 무슨 죄인가/ 잘못 채운 나를 탓해야지”(‘단추’)

시인은 지나간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억지로 삶의 단추를 잡아 떼어 끝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난 이제부터 단 1초의 시간도/ 당신에게 주지 않을 거예요// 탕탕탕!”(‘이별, 그 후’) 같은 단호함이 필요하지만 쉽지 않다. “얼마나 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어야/ 사랑을 알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기다림과 그리움이 지난 후에야/ 그 사랑에 덤덤해질 수 있을까”(‘사랑, 그 후’)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슬픔의 근원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슬픔이란 참 날카롭기도 하다/ 나날이 박혀와 숨쉴 수가 없는데// 그 입자마다 가득 들어차/ 무심히 웃고 있는 그대여// 알면서 그리 웃는가,/ 내 슬픔의 근원이 당신이라는 걸”(‘슬픔의 입자’)

지난 사랑을 붙들고 시인은 운다. 비도 ‘오는’ 게 아니라 ‘우는’ 것이다. “밤부터 내린 비/ 빗물 스미듯 스며드는 누군가의 생각으로/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는 당신,// 조금만 우십시오/ 조금만 추억하십시오”(‘비 운다’) 가버린 사랑을 향해 되뇐다. “그대여 섣불리 짐작치 마라/ 내 사랑이 작았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의 크기가 작았을 뿐/ 내 사랑이 작았던 게 아니라/ 그대가 본 것이 작았을 뿐”(‘보여줄 수 없는 사랑’)이라고, “그대여, 삼류영화를 보고 삼류시를 쓴다고 해서/ 내 사랑마저 삼류겠느냐 나의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세상의 어떤 자로도 잴 수 없는 크고 깊은 것”(‘작고 여린 사랑 이야기2’)이라고.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다. 대중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정하 특유의 아포리즘으로 가득한 이 시집에서 시인은 “한 뼘이 길이 되어 끝내 당도할 그 어디”에서 “고마운 당신”을 기다린다.

독자들의 캘리그라피를 함께 수록한 이 시집 서문에 “먼 길을 돌아오는 동안 우여곡절 또한 많았다”면서 “마지막으로 매달리기로 한 것이 시였고, 시를 쓸 때만큼은 그 어느 순간보다 기뻤고 행복했고 눈물겨웠음을 고백한다”고 이정하는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