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과학은 어느 정도 공통된 발전단계를 거치며 진화한다. 그것은 ‘모델링’이라고 불리는 지식의 집대성, ‘분석’을 통한 이해, ‘제어’를 통한 대상의 조작이다. 지난 60여년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분자생물학은 생명의 최소 구성요소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마치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처음 발견한 자동차를 분해해 그 부품에 대한 카탈로그를 완성하는 것과 같다. 그 다음 단계는 발견된 구성요소에 대한 지식을 집대성해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모델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모델을 분석해 생명현상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의 이해를 토대로 생명현상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하는 제어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모든 과학은 이와 같이 대상 시스템의 제어를 향해 진화해 간다.
조광현 KAIST 교수·바이오및뇌공학 |
따라서 생명현상을 분자네트워크라는 모델의 분석을 통해 해석하고 동적 평형상태를 원하는 방향으로 변형시킬 수 있도록 네트워크의 특정 타깃 분자를 조절하면 비로소 생명현상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인체질환으로 변형된 분자네트워크의 다이내믹스를 정상으로 복원하기 위한 신약개발 타깃을 발굴하고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그 효능과 부작용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시행착오와 우연한 발견을 통해 이루어져 온 신약개발 과정을 시스템과학과 IT를 융합해 체계화하고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 이는 단순히 IT를 활용해 데이터를 가공하거나 통계기술을 적용해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과학을 응용해 생명현상의 본질적 동작원리를 분자네트워크의 다이내믹스로 파악하고 이를 제어하기 위한 분자타깃을 발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서막인 것이다.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신약개발 시장에 소규모 바이오벤처회사도 도전장을 내볼 수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됐다. 생각의 벽을 깨고 다른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에 합류해야 할 시기이다. 보이어와 스완슨도 놀랄 만한 흥미진진한 바이오산업의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조광현 KAIST 교수·바이오및뇌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