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몽인 등 지음/전송열, 허경진 엮고 옮김/돌베개/1만8000원 |
조선시대 한라산은 명승으로 이름 높았으나 실제 오른 사람들은 드물었다.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고 구름도 많아 신령한 산이라고 그렇다는 말이 돌기도 했으나, 당시로서는 건너가려면 목숨을 걸기도 했던 제주도에 있어 그랬을 것이다. 최익현의 한라산 유람도 1873년 제주도로 귀양을 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터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유한라산기’를 적어 전하는데, 지형을 묘사하면서 한라산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각종 토산물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산과 다르다고 평가했다
“…말은 동쪽에서 나고, 절은 남쪽에 모여 있으며, 곡식은 서쪽에서 자라기에 적절하고, 뛰어난 사람은 북쪽에서 많이 나며 나라를 향한 충성심도 남다르다.”
조선 선비들이 전국 명산 20곳을 유람하여 적어둔 기록을 골라 엮은 책이다. 선비들의 유람은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태산에 올라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고 한 공맹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유람은 도를 깨닫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김효원이 강원도 두타산을 둘러보고 쓴 ‘두타산일기’에 “산은 그 푸른빛을 받아들여 천고토록 없어지지 아니하듯, 군자도 그 산의 모습을 보고서 명예와 절조를 닦아 우뚝하게 홀로 선 자를 생각해야 하네”라고 적은 것이 그렇다.
산을 즐기는 방식이 지금과는 분명 다르지만, 산을 누리는 조상들의 독특한 방식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강구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