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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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폭염에 열대야까지

“축융(祝融·불의 신)이 남쪽으로 와서 불의 용(龍) 채찍질하니, 불의 깃발 활활 타오르고 하늘 벌겋게 불태우네. 해 바퀴 한낮에 엉겨붙어 가지 않으니, 온 나라가 마치 벌건 난로 속에 있는 듯하네.” 당나라 시인 왕곡이 쓴 ‘고열행(苦熱行)’의 한 구절이다. 숨이 막히는 불볕더위의 고통을 표현한 이 시가 가슴에 와닿는 때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낮에는 기록적인 폭염이, 밤에는 열대야가 맹위를 떨친다.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 때문이다. 어제부터는 중국 북부의 무더운 공기가 우리나라 상공으로 유입됐다. 서울은 그제 올 들어 처음 폭염경보가 발령된 데 이어 어제 낮 최고기온이 35.7도를 기록했다. 오늘은 36도까지 오른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 낮 최고기온 34.4도(8월6∼7일)를 상회한다. 열사병 등 온열질환자 수도 크게 늘었다.

열대야는 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일 때를 말한다. 무덥고 짜증나는 밤이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도 자주 깨게 된다. 이런 선잠을 ‘괭이잠’이라 한다. 만사가 귀찮아진다. 불쾌지수가 높아져 사소한 시비로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올해 7월23일부터 8월4일까지 서울에서 열대야 발생일수가 무려 12일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 열대야 발생일수는 5일에 불과했다.

지구온난화에다 도시화가 겹치면서 수은주가 올라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물자, 에너지가 한데 모여 많은 열을 뿜어냄에 따라 온실효과가 커지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열기를 흡수하지 못해 도시의 열섬(heat island) 현상을 낳는다. 그 결과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폭염과 열대야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언젠가는 여름 내내 더위로 고통스러운 낮과 밤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집에 에어컨이 없던 시절엔 동네 공원에 가서 별을 보며 더위를 식히곤 했다. 지금은 에어컨 덕을 보지만 전기요금 고지서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기상청은 9월 중순까지 더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9월 후반이나 돼야 맑고 청명한 가을날씨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 예보만은 틀리기를 바란다. 많은 이들의 소망이다.

박완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