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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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처럼… K-팝, 세계를 품으려면…

최근 10여년간 한국 대표 문화로 자리잡아
국내선 “한국이 이룬 성공” 자아도취에 우쭐
어떻게 국가 브랜드로 써먹을까, 어떻게 돈 벌까?
대부분 비즈니스나 국수주의 입장 못벗어나
이규탁 지음/한울아카데미/2만6000원
케이팝의 시대/이규탁 지음/한울아카데미/2만6000원


케이팝(K-pop) 현상을 인문학적으로 풀이한 교양서이다. 대중문화를 연구해 온 국내 소장 학자인 저자의 냉정하면서도 다양한 관점이 드러난다. 최근 10여년간 케이팝은 한국의 대표 문화로 자리 잡아 왔다. 케이팝은 속칭 ‘아이돌 댄스음악’으로도 불린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뉴욕 무대에서 대성공을 거둔 직후인 2012년 10월 4일이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펼쳐진 그의 무료공연은 인기 절정이었다. AP를 비롯한 각국 미디어의 취재 열기, 객석 곳곳에서 태극기가 등장한다. 싸이의 공연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에 취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대중문화에 굳이 뭔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의미가 없다. 대중문화란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케이팝에 대한 한국 미디어의 보도는 천박한 국수주의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간 국내 연예 매체 대부분은 세계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케이팝을 한국 국적으로 묶어두려는 보도 태도로 일관해 왔다. ‘우물 안 개구리식’ 보도에 다름아니다.

예컨대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팝 가수라는 ‘카라’의 도쿄 첫 공연 당시를 상기해 보자. 당시 한국의 연예 매체 기사들을 보면 ‘정복’, ‘점령’, ‘입성’ 등의 단어를 쏟아냈다. 마치 한국 음악이 일본을 지배했다는 식이었다. 정작 내막은 그게 아니었다. 카라가 부른 음악의 대부분은 국내 히트곡이 아니었다. 일본 작곡가가 만들어주고 일본어 가사가 붙은, 철저히 일본 시장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였다. 이를 일깨워 주는 연예 기사는 거의 없었다.

일본에서 최고 인기를 누렸던 보아도 같은 경우다. 일본 작곡가가 만들어준 곡에 일본어 가사를 붙인 노래로 활동했다. 아예 그녀가 ‘한국 사람인 줄 몰랐다’는 일본 팬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한국 연예 매체는 그녀를 ‘일본에서 성공한 한류 스타’의 일원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동방신기나 소녀시대 등 한류 스타들은 한국 노래로 일본 팬들에게 다가간 측면도 없진 않다. 그 모든 것을 묶어 한류라고 자랑하면서 우쭐해야 할까?

케이팝이 자랑스러운 한국의 대표 문화로 언급되는 것도 나쁘진 않다. 심지어 대통령 취임식 때 ‘강남스타일’이 불린 것은 흥미롭고 놀랍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 케이팝 그 자체에 대한 논의가 과연 존재하는가. 어떻게 하면 케이팝을 포장해 국가 브랜드로 써먹을까 또는 어떤 식으로 돈을 벌까, 카타르시스에 도취하는 자기 만족 내지 대리 만족을 느끼는 건 아닌가.

많은 연구자나 음악 평론가들이 이런저런 언설로 케이팝을 바라보지만 대부분 비즈니스적 관점 내지 국수주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신자유주의적 입장 또는 성(性) 역할 담론, 인터넷 문화 담론 등의 소재로 케이팝을 활용하기도 한다.

저자는 케이팝이 ‘한때 바람몰이 문화’, ‘아이돌과 기획사가 만들어낸 진정성 떨어지는 음악’, ‘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질 낮은 문화’로 인식되는 것을 걱정한다. 그보다도 폭넓고 복합적인 음악이자 시대적인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고 주장한다. 영국이 낳은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처럼 말이다. 비틀스는 시대의 흐름을 대변하고 시대의 아픔을 노래했으며, 도도한 세계문화를 이끌어왔다. 케이팝 음악 자체를 좋아하고 케이팝에 대해 이야기하며, 세계적인 젊은이 문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 녹여내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케이팝 유통시장의 실체도 전한다. 2016년 상반기 현재 한국의 디지털 음원 수익배분 구조를 보면 너무 왜곡되어 있다. 대체로 수익은 유통사가 40%, 기획·제작사가 44% 정도를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사와 기획자가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구조다. 나머지 16% 가운데 저작권자(작곡, 작사가 등)가 갖는 수익은 10%이며, 실연자(아이돌 스타)에게는 6%만이 돌아간다. 디지털 음원으로 100만원을 벌었으면 아이돌에게 돌아가는 돈은 6만원뿐이다. 그뿐인가. 세금, 각종 비용을 떼고 남은 수익을 멤버들 머릿수대로 분배한다. 대중의 스타 아이돌 멤버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이런 수준이다.

이를테면 애플이 음원 사이트 아이튠즈(iTunes)를 통해 얻는 수익 중 16%를 실연자에게 지급하거나 유튜브가 가수에게 45%의 수익을 배분하는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저자는 “한국의 상황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라면서 “구조적으로 저임금 노동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광고 수입을 기대하는 성공한 스타 몇 명을 제외하곤 대부분 저임금에 허덕인다. 그러면서도 끽소리 못하는 현실이 한국의 연예계 구조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