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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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진호 감독, ‘덕혜옹주’ 역사왜곡 논란에 답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등을 연출한 ‘멜로영화의 대가’ 허진호 감독이 올 여름 극장가 대전에 유일한 여성 중심 영화 ‘덕혜옹주’로 출사표를 던졌다. 권비영 작가의 동명소설을 극화한 이 작품은 손예진 박해일 등 걸출한 배우들을 앞세워 흥행에 성공했지만, 개봉 전 일부 누리꾼의 역사왜곡에 관한 삐딱한 시선에 둘러싸여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2007년 ‘행복’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호우시절’(2009) ‘위험한 관계’(2012) 등을 찍은 허 감독은 9년 만에 국내영화로 복귀하며 흥행에 대한 목마름을 표출하기도 했다.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이덕혜(손예진)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일본에 강제유학을 떠난 후 고국에 돌아오기까지 무려 37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그녀의 가슴 아픈 삶에 주목했다.

허 감독은 “덕혜옹주가 귀국하던 날 공항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노상궁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일제의 핍박이 심했던 시절, 덕혜옹주를 비롯한 영친왕 일가(그녀의 오빠)은 일본에서 귀족대접을 받으며 호의호식했다는 점 때문에 이들을 미화해 비난 받을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가 공개된 후 이런 논란들은 대부분 잦아들었다. 이야기의 진정성에 집중한 허 감독의 뚝심이 통한 것. 인터뷰에서 허 감독은 그 어떤 영화보다 고뇌가 많았음을 드러냈다.



“일단 원작소설이 있고, 여기에는 덕혜옹주에 대해 극화시킨 부분도 분명 있어요. 사실 아무리 많은 고증과 기록이 있다고 해도 진짜 팩트(사실)는 알 수가 없는 부분이잖아요. 극 초반은 되도록 고종(백윤식 분)의 망명 시도나 독살사건 같은 사실을 근거로 한 장면들을 배치했어요. 그런 부분들이 고명딸인 덕혜에게는 훗날이 돼서도 트라우마로 남았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당시 신문을 보더라도 덕혜는 당시 ‘아이돌 스타’ 같은 존재였어요. 일거수일투족이 신문에 실리고 덕혜가 꼈던 머리핀, 그녀가 작곡한 ‘쥐’라는 동요가 대유행할 만큼 민중의 사랑을 받았죠. 덕혜는 아버지 고종황제의 독살을 목격했기에 일본에서도 물을 함부로 마시지 않았다고 해요. 늘 마호병 같은 걸 들고 다녔죠. 연출하면서 정말 좋았던 것은 상상임에도 모든 사건이나 행동의 이유가 분명했다는 거예요. 후반부에 영친왕 망명작전이라든가 덕혜의 연설장면 같은 허구를 가미하면서 ‘아 정말 그랬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상상하게 되는 거죠.”

허 감독은 미화에 대한 우려에 대해 ‘어느 선까지 가야할지’ 고민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적정한 선 안에서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개연성 있게 풀어내자는 생각을 했고, 그의 이런 연출 방향은 적중했다. 



“저는 덕혜옹주가 일본정부에게 철저히 이용당한 인물로 파악했어요. ‘어린 시절 백성의 관심과 사랑 속에 큰 인물이었고 자존심도 셌을 거다’, ‘아버지가 그렇게 독살 당했는데 일본에서 아무리 귀족대접을 받았다고 해도 그 곳에 마음을 정착할 수 없었을 거다’ 등등 상상에 의해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죠. 왕조나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물론 갈리겠지만,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싶었어요. 이 작품을 시작한 이유 자체가 그녀를 재조명하겠다거나 위대한 사람(위인)으로 그리려고 한 게 아니에요. 마지막 황녀였던 그가 왜 그토록 고국에 돌아오기 힘들었을까. 왜 말년에 정신병원에 끌려가야 했을까 그런 궁금증에서 시작한 거죠.”

영화에는 김장한(박해일 분)이란 인물의 덕혜에 대한 충성심과 사랑을 오가는 미묘한 감정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감정신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고, 허진호식 멜로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공산도 크다. 이에 대해 허 감독은 “그런 질문 참 많이 받았다”며 “언젠간 다시 멜로영화를 할 것”이라며 호쾌하게 웃어보였다.

“김장한과 덕혜의 관계가 멜로로만 비춰지진 않길 바랐어요. 장한이 덕혜를 끝까지 데려오려고 한 데에는 사랑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 이상의 책임감, 역사관 등이요. 독립운동가였던 장한이 나중엔 기자가 되는데, 어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도 있지 않았을까. 정부가 덕혜옹주의 입국을 거부한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부끄러운 일이죠. 일본에서 친일파 행각을 벌였든, 귀족 대접을 받았든 일단 한국으로 데려와서 그 책임을 묻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멜로가 부각되다 보면 그런 부분들이 묻힐까 걱정이 됐어요.”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