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지난달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필터에서 유독물질인 옥틸이소티아졸론(OIT)이 검출됐다고 밝히면서 문제의 필터가 쓰인 제품명을 공개하지 않은 탓이다. ‘제품명 좀 알려 달라’는 지인들의 전화에 “기자들도 모른다”는 답만 반복했다. 결국 소비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환경부는 이틀 후 제품명을 공개했다. 이날 환경부 홈페이지에는 접속자가 폭주했다. 평소 환경부가 내는 보도자료의 온라인 조회 수는 수백건에 불과한데, 이날 자료의 조회 수는 6만건에 육박했다. 네티즌들은 이 자료를 서로 퍼나르며 공유했다. ‘정부가 알아서 손을 쓰겠지’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은 멍청한 짓이란 것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나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깨달은 학습효과로 해석됐다.
조병욱 사회부 기자 |
지난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현안보고에서도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위해성 평가에 3년간 6억원이 소요되기 때문에 OIT 필터 독성실험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국민은 귀를 의심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주무부처 장관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아서다. 2000년대 한창 팔렸던 가습기 살균제도 수백명의 사망자를 내고 10년이 지나서야 문제가 됐다.
미국은 OIT를 면역 독성물질로, 유럽연합(EU)은 피부 부식성·과민성 물질로 분류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끼리 책임소재를 따지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OIT 검출 제품을 제조·판매한 기업들은 환경부의 모델명 공개에 반박하며 “해당 제품은 수출형 모델로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다”고 강변할 뿐이다.
더위를 식히려고 잠시 튼 에어컨에서, 어린 자녀의 건강을 지킨다며 사온 공기청정기에서 얼마나 OIT에 노출됐을까 불안해하며 살고 있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정부와 기업이 국민 건강은 외면하고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에만 급급해하는 사이 애꿎은 국민만 영문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고 있다.
조병욱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