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럴까. 전시장을 찾은 대부분은 작품을 보고 제목을 비교한다. 작품 내용과 제목이 얼마나, 어떻게 비슷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제목이 ‘무제’라고 돼 있거나 엉뚱해 보일 때는 무척 의아해한다. 미술작품이란 외부 대상을 닮거나 정확하게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
이어, 표현론으로 미술작품이란 예술가의 느낌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똑같은 대상이지만 서로 다른 예술가가 어떻게 느끼고 나타내느냐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미적 가치를 갖는다. 예술가의 감정이나 상상력을 강조한 낭만주의 작품이나 구불구불한 선으로 마음의 고통을 표현하려 한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하나, 형식론인데 미술작품 안의 색, 형태, 명암, 양감, 질감 등과 같은 구성요소들은 어떤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는가가 중요하므로 대상이나 예술가의 감정처럼 작품 외적인 것보다 작품 자체를 주목하자는 것이다. 복잡하게 여겨지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넥타이를 고를 때 우리는 넥타이가 무엇을 나타냈는지 디자이너의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색, 형태, 문양 등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만을 생각한다. 집안 가구를 새로 배치할 때 우리는 가구의 색, 형태, 크기 등을 감안해서 공간을 구성한다. 이런 구성 방식이 곧 미술작품의 형식이다. 바실리 칸딘스키나 피터르 몬드리안 같은 추상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유용한 관점이다. 칸딘스키 그림이 역동적이며 활기찬 느낌을 주고, 몬드리안 그림의 기하학적 구성이 차분하고 절제된 느낌을 주는 것은 두 화가 작품의 형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방, 표현, 형식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어떤 작품에는 모방적 측면이, 다른 어떤 작품에는 표현적 측면이, 또 다른 어떤 작품에는 형식적 측면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어느 작품도 하나의 요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세 가지가 모두 포함돼 있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에서 모방과 형식의 흔적을 볼 수도 있고, 칸딘스키 추상화 속에서 표현과 은유적 내용을 암시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더위를 잠시 떨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전시장을 찾아보면 어떨까. 내용을 생각해 보고, 예술가의 감정도 연상해 보고, 형식 자체가 주는 느낌도 가져 보자. 그러다 자기 취향에 맞는 작품을 발견하고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된다면 그게 바로 문화 산책의 길이지 않을까.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