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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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무더위 이기는 미술감상 삼매경

감상 기준은 모방, 표현, 형식
내용과 구성의 조화 따져보고
예술가의 감정도 연상해 보면
문화와 함께하는 즐거움 만끽
정말 더운 날씨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얼굴로 가슴으로 땀이 흐른다. 1994년 이후 22년 만에 다시 찾아온 최악의 폭염이라고 한다. 전국 대부분에 35도를 넘는 날씨가 계속되고, 밤 기온이 25도가 넘는 열대야도 계속되고 있어 밤잠을 설치기 일쑤이니 머리가 멍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사람들의 생활 패턴도 변했는데 야외보다 실내 생활의 빈도가 높아졌고, 밤에는 영화관으로 몰리고 있다 한다. 서점이나 미술전시장을 찾아 책과 미술작품 속에 푹 빠져 보는 피서법을 즐기는 사람도 등장했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찾은 미술관에서 보는 작품이 더 덥게 만들기도 한다는데 그저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작품 때문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전시장을 찾은 대부분은 작품을 보고 제목을 비교한다. 작품 내용과 제목이 얼마나, 어떻게 비슷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제목이 ‘무제’라고 돼 있거나 엉뚱해 보일 때는 무척 의아해한다. 미술작품이란 외부 대상을 닮거나 정확하게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이러한 낯섦과 의아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작품을 보는 관점을 여러 가지로 바꿔보자. 미학에서 예술을 정의하는 세 가지 관점인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을 활용해 보는 것이다. 먼저, 모방론으로 미술작품은 외부 대상을 모방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18세기 신고전주의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훌륭한 미술작품은 대상을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미술의 역사 속에서 약 2300년 동안 미술작품이란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기에 어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아서 무엇을 그렸는지를 찾고 제목을 확인하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 표현론으로 미술작품이란 예술가의 느낌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똑같은 대상이지만 서로 다른 예술가가 어떻게 느끼고 나타내느냐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미적 가치를 갖는다. 예술가의 감정이나 상상력을 강조한 낭만주의 작품이나 구불구불한 선으로 마음의 고통을 표현하려 한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하나, 형식론인데 미술작품 안의 색, 형태, 명암, 양감, 질감 등과 같은 구성요소들은 어떤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는가가 중요하므로 대상이나 예술가의 감정처럼 작품 외적인 것보다 작품 자체를 주목하자는 것이다. 복잡하게 여겨지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넥타이를 고를 때 우리는 넥타이가 무엇을 나타냈는지 디자이너의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색, 형태, 문양 등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만을 생각한다. 집안 가구를 새로 배치할 때 우리는 가구의 색, 형태, 크기 등을 감안해서 공간을 구성한다. 이런 구성 방식이 곧 미술작품의 형식이다. 바실리 칸딘스키나 피터르 몬드리안 같은 추상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유용한 관점이다. 칸딘스키 그림이 역동적이며 활기찬 느낌을 주고, 몬드리안 그림의 기하학적 구성이 차분하고 절제된 느낌을 주는 것은 두 화가 작품의 형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방, 표현, 형식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어떤 작품에는 모방적 측면이, 다른 어떤 작품에는 표현적 측면이, 또 다른 어떤 작품에는 형식적 측면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어느 작품도 하나의 요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세 가지가 모두 포함돼 있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에서 모방과 형식의 흔적을 볼 수도 있고, 칸딘스키 추상화 속에서 표현과 은유적 내용을 암시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더위를 잠시 떨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전시장을 찾아보면 어떨까. 내용을 생각해 보고, 예술가의 감정도 연상해 보고, 형식 자체가 주는 느낌도 가져 보자. 그러다 자기 취향에 맞는 작품을 발견하고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된다면 그게 바로 문화 산책의 길이지 않을까.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