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를 강타한 규모 6.8의 강진. ‘역사의 도시’ 바간은 아수라장이 됐다. 200곳 가까운 불탑과 사원이 부서졌다.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자 애쓴 미얀마인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할까.
바간의 아난다 사원. 1105년 지어진, 아난다의 이름을 딴 사원이다. 그는 석가모니의 사촌동생으로 늦깎이 제자였다. 석가모니가 55세 때 시자로 들어가 25년 동안 바라지를 한 인물이다. 석가모니 입적 때 모인 500명의 아라한. 그는 아라한이 아닌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라한은 깨달은 자를 뜻하는 말이다.
키얀지타왕은 왜 사원에 아난다의 이름을 붙였을까. 깨달음의 밑바닥을 봤기 때문은 아닐까. 석가모니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을 아난다는 왜 깨닫지 못했던 걸까.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 시자이기에 아라한이기를 거부한 것은 아닐까. 입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으니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에게는 존자(尊者) 호칭이 따라붙는다. 바로 아난존자다. 위대한 성정을 본 키얀지타왕도 대단한 사람인 듯하다.
바간의 역사를 장식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원의 대칸 쿠빌라이. 원은 ‘미엔’을 공격했다. 미엔은 한자로는 면(緬)이라고 쓴다. 원에서는 미얀마를 그렇게 불렀다. ‘동방견문록’에는 그때의 기록이 자세히 남아 있다. 미엔의 왕은 2000마리의 코끼리 부대를 동원해 대항하지만 궤멸당하고 만다. 바간 왕조는 이때 막을 내린다. 미엔에 입성한 원의 나시르우딘. 황금탑을 본 뒤 쿠빌라이에게 파발을 띄웠다. “대칸이 원한다면 탑을 부수어 금은을 보내겠다.” 쿠빌라이 왈, “미엔 왕은 영혼의 안식을 바라며 오래오래 자신을 기억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부수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때 살아남은 탑과 사원들. 지금은 미얀마를 떠받치는 정신이다. 미얀마는 부유하지 않다. 강진을 이겨내고 다시 우뚝 서기를 빌어 본다.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