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미친 여자들’이 2016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서 예상밖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약체로 분류됐던 대표팀은 지난 3, 4일 각각 열린 조별리그 1차전 파키스탄(10-0)과 2차전 쿠바(4-3)를 차례로 제압하며 12개 출전국 중 상위 6개국이 나가는 슈퍼라운드 진출을 확정했다. 투타를 겸업하며 몸을 아끼지 않는 ‘천재소녀’ 김라경(17·계룡고)과 일본 소프트볼 1부리그 출신 귀화선수 배유가(27·경남도체육회)의 활약이 특히 돋보인다는 평가다.
김라경 |
김라경은 어릴 때부터 지금은 프로야구 선수가 된 오빠(한화 김병근)를 따라 야구장을 찾다가 야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김라경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계룡리틀야구단의 유일한 여자선수로 이름을 올리며 남자선수들과 똑같은 훈련을 받았다. 오직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김라경은 지난해 방송을 타며 야구 ‘천재소녀’로 소개된 이후 프로야구 시구까지 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김라경은 “지난해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한국에 여자야구 실업팀이 없기 때문에 운동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SNS 계정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팬들이 많아 마음을 다잡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선수로 해외에 진출할 생각은 없다. 국내에 남아 대학 체육교육과에 진학해서 여자야구 인프라를 넓히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배유가 |
배유가는 재일교포 3세로 언니 배내혜와 함께 2014년에 한국 국적을 택했다. 일본에서 소프트볼 1부리그 선수로 활약하던 배유가에게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둔 황창근 소프트볼 대표팀 감독이 귀화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의 언니 배내혜는 일본 국가대표 소프트볼 선수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소프트볼 자매’는 현재 모두 한국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배유가는 현역 선수로, 배내혜는 소프트볼 코치로 활동 중이다.
한국여자야구는 척박한 토양 속에서 근근이 명맥만 이어왔다. 여자야구의 인적 인프라는 전국 40여개의 아마추어팀이 전부이며, 이들은 모두 동호회 수준이다. 한국여자야구연맹(WBAK)도 2007년 창립돼 채 10년이 안 됐다. 선수들은 부족한 지원 속에서 생업과 병행할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전 선발투수로 나선 강정희(30)는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주장이자 안방마님인 곽대이(32·양구블랙펄스)도 직장인이다.
두 선수는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여자야구의 저변이 넓어지길 기대했다. 배유가는 “일본은 여자야구 프로 4팀이 전국을 돌며 경기를 한다. 한국도 여자야구 운동환경 개선을 통해 더 많은 선수들이 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라경도 “선수들이 직장을 다니면서도 국가대표라는 책임감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다. 앞으로 여자야구에 뜨거운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대표팀은 7일부터 열리는 슈퍼라운드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노린다. 한국이 지금까지 거둔 최고 성적은 8개국이 출전한 2008년 일본 대회의 6위다.
기장=안병수 기자, 사진 남제현 기자 r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