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고 대통령과 야당 대표 관계가 각별한 건 아니다. 오바마정부 들어 공화·민주 양당의 당파주의가 더 심해졌다는 평가도 많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당선 후 최우선 과제로 야당 대표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의 관계 개선을 꼽았다. 백악관에서 라이언과 술잔을 부딪치며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자주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우리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황정미 논설위원 |
최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추미애 대표가 선출됐다.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파트너다. 두 사람은 동향(대구 달성) 출신이지만 정치 이력은 크게 달랐다. 보수, 진보 진영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인 탓에 두 ‘여성 영수’의 만남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첫 여성’ 꼬리표를 많이 달았던 두 사람 모두 여성을 내세우지 않는 성향이 강했다. 박 대통령은 2000년 한나라당 부총재 경선에 나섰을 때 ‘가만히 있으면 여성 몫 지명직 부총재로 임명되는데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당내 분위기와 맞섰다. “여성 지도부는 들러리라는 금기를 깬 것”이라고 자평했다. 추 대표도 2003년 ‘첫 여성 원내대표’ 자리를 거부하고 민주당 대표직에 도전했다. 그는 “나는 여성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인”이라고 강조한다.
남성 위주의 여의도 세계에서 독보적 위치에 오른 두 사람의 정치력은 평가할 만하다.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으로 알려진 것도 비슷하다. 그래서 박 대통령과 추 대표가 정치 현안에 쉽게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잖다. 그렇다고 비관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박 대통령이나 추 대표는 국민, 민생을 늘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이다. 2009년 연말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한나라당과 노조법 개정안을 처리했다가 당 징계를 받은 추 대표는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해야 당도 살리고 국민도 살린다”고 했다.
추 대표는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지금 민생 경제가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면서 ‘비상 민생경제 영수회담’ 개최를 제안했다. “이념과 진영 논리를 벗어나 실사구시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대통령의 화답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이미 야당 대표와의 회동 정례화를 약속했다. 그동안 청와대 회동은 이솝 우화의 ‘여우와 두루미’처럼 서로 먹지 못할 것만 테이블에 놓고 기싸움을 벌이다 끝났다. 청와대 ‘밥상’을 어떻게 차리느냐가 관건이다.이번만큼은 민생 문제에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밥상을 차려야 한다. 며칠 후면 추석 연휴다. 올 추석 밥상 민심은 박 대통령과 추 대표 하기에 달렸다.
황정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