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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시행 2년… 누구를 위한 '단통법'이었나

정치권, 통신비 인하 압박… 이통·제조업계는 ‘좌불안석’/ 시행 2년 앞두고 개정안 발의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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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일 시행 2년을 맞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이른바 ‘단통법’이 뜨거운 감자로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오는 26일 시작되는 제20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야 의원들이 단통법 개정안을 앞다퉈 발의하면서 관련 논의가 곳곳에서 촉발되고 있어서다. 세계일보는 단통법 개정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국회 내 입법 상황과 통신 및 제조업체의 분위기, 정부 기류 및 향후 전망 등을 긴급 점검했다.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앞두고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른바 ‘단통법’) 개정안 발의가 잇따르면서 단통법 개정 여부가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통신 및 제조업계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단통법 개정안 논의와 맞물려 정치권 및 소비자단체의 가계통신비 인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관측하면서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여도 야도 단통법 개정안 발의 러시

19일 국회 의안과 등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발의된 단통법 개정안은 총 4건이다. 주로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나 선택약정할인율의 인상, 분리공시제 도입 등을 겨냥하고 있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는 출시 15개월이 되지 않는 단말기에 대해 지원금을 33만원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도록 한 제도다. 지난 6월 정부 내에서 한때 폐지가 검토됐지만 해프닝에 그친 바 있다. 선택약정할인제는 단말기 보조금을 받지 않고 대신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현행 20%)이고, 분리공시제는 통신사 보조금과 제조사 장려금을 구분해 공시하는 제도다.

먼저 새누리당에서는 심재철 의원이 지원금 상한선 폐지와 일선 통신유통점이 지급하는 추가지원금(이동통신사 지원금의 15%) 상한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변재일, 신경민 의원이 각각 개정안을 제출했다. 변 의원의 개정안은 분리공시제 도입과 위약금 기준과 한도 고시 등을, 신 의원의 개정안은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와 분리공시 도입 등을 각각 담았다.

지난 4일에는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이 선택약정의 할인율을 현행 20%에서 30%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 의원들이 이처럼 단통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나선 것은 시민들의 가계통신비 인하 요구가 거센 것도 있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주요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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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 2년 평가 놓고 갑론을박

시행 2년이 다 돼 가는 단통법의 성과를 놓고도 논쟁이 한창이다. 가계 통신비가 줄어드는 등 성과도 적지 않지만 지원금 경쟁을 제한하면서 소비자들의 체감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우선 가계통신비가 줄어들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14년 월평균 가계통신비는 가구당 15만400원으로, 법 시행 전인 2013년(15만2792원)보다 1.6% 줄었다. 지난해는 14만7700원으로 또다시 1.7% 줄었다. 이동전화 가입요금도 줄었다. 2013년 이동전화 평균 가입요금이 4만2565원이었지만, 올해 1∼3월에는 평균 3만9142원으로 3000원 이상 줄었다.

중저가 스마트폰 판매도 늘었다. 50만원 이하 중저가폰은 2014년 15종 출시된 데 그쳤지만 올해 7월 말 기준으로 43종이 시장에 풀렸다. 판매 비중은 2013년 16.2%에서 올해 1분기 38.4%로 급증했다. 아울러 선택약정할인 제도도 환영받았다. 미래부는 이달 선택약정할인 가입자가 1000만명을 돌파하고 비중도 26%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반면 번호이동은 대폭 줄었다. 2014년 월평균 72만1177건이던 번호이동 건수는 올해 59만7000건(1월~8월 기준)으로 12만건 이상 줄었다. 기기변경자나 신규 구입자 모두 차별 없이 지원금을 제공하도록 하면서 번호이동도 대폭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체적으로 20% 요금할인이라든지 공시지원금 제도 등을 도입,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든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법 시행 이전에는 연간 8조원가량의 마케팅 비용을 200만명의 가입자가 독식했다면 법 시행 이후에는 2000만명이 나눠 누리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소비자 및 시민단체들은 단통법이 통신사들의 마케팅 경쟁을 제한해 오히려 최신 스마트폰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즉 지원금 경쟁을 제한하면서 통신사들이 소비자를 위한 적극적인 경쟁을 펼치지 않아 체감효과는 별로였다는 거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정책국장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단통법이 지원금 상한제를 통해 오히려 스마트폰을 비싸게 사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긴장하는 통신 및 제조업계… 전망 불투명

통신 및 제조업체는 국회를 중심으로 단통법 개정 논의가 거세게 이는 것에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자칫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가계 통신비가 뜨거운 이슈로 부각될 수도 있어서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가계통신비 인하는 국민이 가장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인 만큼 개정안 발의와 국감 등으로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핫 이슈로 부각될 수도 있다”고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소비자단체들은 시민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금과 같은 큰 틀을 유지하되 일부 제도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녹색소비자연대 윤 정책국장은 “공시지원금제나 선택요금할인제 등의 기본틀은 유지하되 지원금 상한제를 폐지해 최신폰도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주무부처인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현행 유지’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굳이 시장의 혼란을 미리 줄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미래부 최 장관은 선택요금할인제와 관련해선 “가계통신비가 전 국민의 중요한 관심사이고 정부로선 줄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정책 목표”라며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래부가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데다 이통사와 제조업체, 시민단체 등의 이해도 얽혀 있어 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  “올해 40% 줄었다” “시행 전과 차이 없어” … 단말기 지원금 증감 여부 논란

시행 2년을 앞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른바 ‘단통법’)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엇갈리는 부문은 역시 단말기 지원금 규모의 증감 여부이다. 현재 단통법상 단말기 지원금 상한선이 33만원으로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이전보다 지원금 규모가 줄었다는 주장과 법 시행 이전과 엇비슷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최명길 의원은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 ‘이동전화 지원금 모니터링 보고서’를 바탕으로 단말기 지원금 총규모가 2015년 약 1조5000억원, 올해 6월까지 약 5000억원 가량이 각각 줄었다고 주장했다.

이동통신사들의 이용자 1인당 ‘단말기 평균 지원금’은 단통법 시행 전인 2014년 29만3261원이었지만 2015년 22만2733원, 올해 6월에는 17만4205원으로 40.6%나 감소했다는 것이다. 최 의원실의 분석에 사용된 ‘단말기 평균 지원금’은 공시지원금과 판매장려금, 할부수수료, 위약금 대납, 경품 지원 등을 포함한다.

지원금 규모가 감소하고 관련 마케팅비가 줄면서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은 2015년 3조1688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5581억원(96.7%) 급증했다는 게 최 의원 측 분석이다.

이에 대해 통신업계는 “가입자당 평균 지원금은 단통법 시행 전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최 의원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최 의원실 측이 공개한 수치는 방통위가 특정 스마트폰과 요금제를 기준으로 수집한 값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케팅비로 분류되는 지원금과 20%의 요금할인을 모두 지원금으로 계산했을 때 지난해 이통 3사의 마케팅 비용은 8조6325억원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2014년 8조8220억원에 비해서는 1900억원 정도 줄어든 것이지만 2013년 등 예년보다 늘어난 수치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공방에 대해 “이통사와 제조사가 판매장려금 등 구체적인 지원금 규모를 외부로 밝히지 않기 때문에 지원금 변동을 명확하게 추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